이름

  • 입력 2010.04.12 14:55
  • 기자명 나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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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우리 마을에서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붙인 이름은 재미있는 것이 많다. 작으면 쪽간이, 잘 울면 울보, 코를 잘 흘리면 코보, 코가 커도 코보, 체격이 아주 크면 호마, 마지막 아들은 막동이, 딸이 많은 집에서는 그만예, 끝자, 막내딸은 말순이, 큰 아들은 큰 놈이라고 하였다.

순서에 따라 아들은 일식이, 이식이, 삼식이, 딸은 일순이, 이순이, 삼순이, 확실하라고 확실(確實)이, 부자 되라고 부자(富子), 복을 받으라고 복순(福順)이, 온순하라고 순이, 봉을 닮으라고 봉순이, 비단처럼 아름다운 금순이, 예쁘게 자라고 미자(美子), 미순(美順)이라고도 불렀다.

지금은 순 우리말, 외래어, 전문 작명가가 지은 이름들 어느 것 하나 촌스럽거나 박한 운명을 예언하는 나쁜 이름은 없다.



우리 고향은 봉황면이다. 봉황(鳳凰)은 기린, 거북, 용과 함께 4령(四靈)의 하나로 여겨지며, 수컷은 봉(鳳), 암컷은 황(凰)이다. 매우 드물게 출현하여 커다란 사건의 징후가 되거나 군주의 위대함을 증명했다고 전해진다. 이 새는 매우 아름답고 의미 있는 노래를 불렀고, 인간 음악에 대한 뛰어난 감상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봉황의 모습에 대해서는 문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묘사되어 있으나 모두 상서롭고 아름다운 새로 나타내고 있다. 전해오는 바에 따르면 키는 2.7m 정도였다고 한다. 봉황의 문양은 건축·공예 등에 두루 쓰였고, 여인들이 놓는 수(繡)의 소재로도 많이 이용되었다. 나는 우리 학생들에게 봉황(鳳凰)의 기(氣)를 받아 봉황이 되자고 역설한다. 나 또한 교육자로서 봉황(鳳凰)이 되려고 생각한다.

제자가 공자에게 "정치의 요체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공자는 이름을 정확하게 쓰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다시 말하면 검은 것은 검다고 해야 하고, 악은 악이라고 칭해야 한다. 말을 말이라 하고 사슴은 사슴이라고 말해야 한다. 모든 형태나 관계나 성격이나 형상의 본질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 실체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언어를 사용해야 인간 상호간의 혼란을 예방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지나치게 정에 치우쳐 처신하는 사람을 많이 본다.

자기와 관계있는 사람에게는 관대하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엄하다. 지도자는 바른 이름을 바르게 부를 수 있어야 한다.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이다. 인격은 혼자서가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 형성된다. 두 사람 사이에서 나와 상대방을 구분하는 단위가 인격이다.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좋은 이름이 있고, 기분 나쁜 이름이 있다. 이순신, 김병로, 김혜자, 김연아의 이름은 듣기도 좋고 생각만 해도 좋다. 이완용, 송병준, 연산군은 생각만 해도 기분 나쁜 이름이다. 전직대통령들의 이름을 본다. 재직 중에 역술가들의 풀이에 의하면 집터와 선산이 명당이고, 이름 또한 대통령이 될 좋은 이름이라고 하였다. 자기 고향에 예산을 퍼부어야 이름이 빛나는가. 자기 고향 출신들을 많이 등용해야 이름이 빛나는가. 부패를 단절하자고 그렇게 외쳤던 분이 재벌의 검은 돈을 받는 것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수많은 고달픈 민초에 비하여 호화로운 저택과 재산을 소유하여야 이름이 빛나는가. 그들의 이름은 어떤 이미지로 불려질 것인가.

분명히 이름에는 좋은 이름과 나쁜 이름이 있는 것 같다. 이름은 붙여진 의미가 실제로 그 사람이나 물건에 영향을 미친다. 이름은 중요하다. 이름은 한 사람의 의식과 무의식을 지배한다. 같은 옷감을 '수건'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수건이 되고 '걸레'라고 부르면 걸레가 된다. 이씨 중에서 '이완용'이라는 이름을 짓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어머니는 나주 토계리의 부자 '허봉고'의 이름을 따서 아들을 봉고라고 불렀다. 나와 동생들은 뒷자만 바꾸어 봉화, 봉조, 봉진이라고 불렀다. 마을 이장이 적당한 한자를 조합하여 작명하고 호적에 등재하였다. 그래서 내 이름은 장봉화(張奉化)이다. 나는 내 이름이 매우 좋다. 한자 풀이대로 베풀고 봉사하여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것이다. 아내 김미숙(金美淑)은 몸매나 얼굴이며 마음까지 아름다운 여성이다.

우리 아들 정환(晶煥)이는 이 세상을 밝고 맑게 빛나게 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며느리 하선화(河善化)는 물을 닮아 세상을 착하게 변화시킬 것이다. 딸 소영(素榮)이는 깨끗하고 밝은 번영의 길로 인도하는 여성이 될 것이다. 유원(裕媛)이는 사람들이 넉넉하고 여유로움 가운데 아름다운 여성이 기억할 것이다. 사위 정진성(鄭鎭成)이는 내부이든 외부이든 어떠한 적도 진압하여 성공하리라 생각한다. 사람들이 들으면 기분 좋아하는 이름,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좋은 이름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되리라 생각한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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