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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風兩袖 청풍양수
이영창 기자  |  lyc@naju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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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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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 맑을 청, 風 바람 풍, 兩 두 량, 袖 소매 수

'두 소매 안에 맑은 바람만 있다'라는 뜻으로 청렴한 관리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명(明)나라 때의 우겸(于謙)과 관련된 고사(故事) 등에서 유래되었다.



[유래]

중국에서 청백리로 가장 유명한 이는 명나라 때의 관리였던 우겸(于謙 : 1398~1457)이다.

23세의 나이에 진사시험에 일등으로 합격하여 지방관으로 근무할 때 억울함을 호소하는 민초들의 하소연을 제 식구의 말처럼 들어주고 청렴하고 소신 있는 판단으로 일관되게 직무를 수행하여 우청천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가 지방관으로 근무할 때 수도에 올라 올 기회가 있었다.

그때는 지방의 공직자가 수도에 올라올 때는 금은보화는 아니더라도 특산품 정도는 들고 가서 중앙의 고관들에게 상납하는 것이 관례였다.

당시 북경에는 황제의 총애를 등에 업고 세도를 부리던 왕진이라는 환관이 있었는데 그에게 온갖 뇌물이 잇따랐다. 지방관이 왕진을 만나려면 은 100냥이 필요했을 정도였다.

지금의 산서(山西)를 총괄하던 지방 수장이었던 우겸이 수도인 북경에 올라올 때 친구가 "특산품이라도 가져와서 왕진에게 잘 보이는 것이 낫지 않겠나"고 충고 하자 우겸은 태연히 이렇게 말했다.



"淸風兩袖朝天去 청풍양수조천거

免得閭閻話短長 면득여염화단장

두 소매에 바람만 넣고 천자를 뵈러 가서

백성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은 면하리라."



그 후 뇌물 대신 바람을 소매에 넣고 간다는 '청풍양수'란 말이 청렴한 공직자를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나중에 그의 벼슬은 병부시랑(국방부 차관)을 거쳐 병부상서(국방부장관)에 이르러 몽고족으로부터 북경을 지키는데 큰 공을 세우지만 모함으로 인해 반역죄를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그가 죽을 때 하늘도 슬퍼했는지 흙비가 내렸다.

그의 아들은 군졸로 끌려갔으며 처도 변방을 지키는 수자리라는 민병(民兵)으로 동원되었다.

모함꾼들은 그가 높은 벼슬에 있었으니 분명히 축재를 하였을 것이라고 떠들며 집을 뒤졌으나 돈 나가는 것이 없었다. 그의 집에서 큰 자물쇠로 채워진 곳간이 발견되어 열어보니 황제가 선물한 칼과 옷 몇 가지가 들어있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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