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초 '전통환경보존조례' 제정

예술문화 활동으로 도심재생 이뤄

  • 입력 2011.12.15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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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를 향하고 있다는 일본 방송뉴스를 보면서 가나자와를 향했다.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는 그칠 생각이 없는 듯했다. 도착하자마자 맨 먼저 관광안내소를 찾았다. 가나자와의 역사와 지리적 여건 그리고 관광자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정말 반가운 표정으로 진지하게 설명을 하는 해설사의 모습에 역시 다른 점이 있구나 하고 느꼈다.

가나자와 시는 일본 혼슈의 중앙부에 위치한 이시카와 현의 현청 소재지이다. 시가지의 동남쪽은 산지이고 북서부는 일본해에 접해있다. 사이가와 강과 아사노가와 강 사이에 시가지가 자리하고 있다. 시가지의 중심에는 가나자와성과 일본 3대 정원의 하나인 겐로쿠엔이 있다.

가나자와시의 인구는 2010년 현재 약 45만8천명이다. 연간 7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관광도시이다. 역사문화유적이 많은 이유는 여느 일본도시와 달리 전쟁피해이나 대규모 천재를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적인 공예도시로 유명하다. 2014년의 호쿠리쿠 신칸센(도쿄~가나자와) 개통을 앞두고 경제발전과 관광객 유치에 기대를 하고 있다.

300년 동안 가나자와를 지배했던 마에다가(家)가 쌀 생산으로 얻어진 재력을 바탕으로 문화와 학문에 투자함으로써 금박·가가 유젠(염색) 등의 전통공예와 다도·노가쿠 등의 전통문화, 가가요리·화과자 등의 음식문화 등이 꽃을 피웠고 오늘날에도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2002년 전북 전주시와 자매도시 결연을 맺어 경제·문화 등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2009년 8월엔 '가나자와 공예작가 작품전'이 전주시 한옥마을의 교동아트센터에서 열렸다. 전시회에서는 일본의 기모노 염색방법의 하나인 가가 유젠과 금을 얇게 편 금박 공예품 50여점이 선을 보여 공예도시 가나자와에 대해 많은 관광객들은 관심을 보였다.

2009년 6월 가나자와 시는 유네스코가 창설한 '창조도시 네트워크'에 등록되었다. 이 네크워크는 창조적·문화적인 산업을 육성하고 있는 세계 각 도시의 국제적인 제휴·상호교류를 유네스코가 지원하고 있는 제도이다. 크라프트&포크 아트, 디자인, 영화, 식문화, 문학, 음악, 미디어 아트의 7가지 분야가 있으며 가나자와 시는 크라프트&포크 아트의 분야에 등록되었다.

가나자와에서는 '크라프트 투어리즘'을 운영하고 있는데 마에다가(家)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공예와 새로운 창작활동의 견학 및 공예체험을 접목시킨 것이다.

그 중심에 '시민예술촌'이 있다.

시민예술촌은 지역의 산업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 모범모델이다. 1919년에 건축된 다이와 방적공장이 문을 닫자 이를 시에서 매입하여 공장부지의 ⅔를 잔디광장으로 조성하여 시민휴식 공간과 레크리에이션 및 방재구역으로, 나머지 공장건물은 리모델링하여 문화예술의 거점으로 활용한 것이다. 시민예술촌은 젊은이들에겐 예술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시민들은 문학, 연극, 음악, 무용, 미술활동에서 전시, 교육, 연습, 작품 활동을 통해 문화예술욕구를 충족하고 새로운 지역문화를 창조하는 곳이다. 또한 운영에서도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시민 디렉터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이용자를 대표하는 민간인 디렉터를 위촉하여 자주적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휴식공간인 PIT3에서 젊은이들을 만났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공간이다. 친구들과 함께 음악연습을 하러왔다는 다케야마 군은 "이곳은 멀티공방, 드라마공방, 뮤직공방, 오픈 스페이스, 아트공방으로 나뉘어 있는데 주로 아마추어들이 활용하고 있다"며 "시간이 날 때마다 친구들과 함께 이용하며 발표회는 물론 교육도 받을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시민예술촌과 함께 가나자와 문화예술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21세기 미술관'은 종전의 이미지와는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미술관으로 일본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2004년 10월 개관한 미술관은 우주선 모형을 닮았다. 시민예술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시민과 문화라는 목표는 같았다. 전시관은 원형으로 벽면은 전체가 유리로 되어 있어 열려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전시품은 물론 체험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가나자와 시의 도심재생 자원가운데 문화예술이 시민예술촌과 21세기 미술관이라면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한 곳은 바로 시내중심가를 이루고 있는 전통이 살아있는 골목길을 간직한 마을의 모습이다.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된 무사들의 가옥은 물론 일반인의 가옥도 잘 보존되어 있으며 마을길은 18세기를 연상케 한다. 시내 중심 곳곳을 흐르고 있는 작은 물길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은 서민들의 생활모습을 엿볼 수 있어 외국인이 많이 찾아온다.

바로 챠야가이와 부케야시키 길이다. 가나자와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물길인 부케야시키는 무사마을을 관통하면서 골목골목마다 연결되어 있다.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옛 정취를 물씬 풍기게 해준다. 모든 담이 노란색으로 치장되어 있어 더욱 친근감을 주고 담장너머로 보이는 작은 정원들은 소박함에 정겨움마저 주었다. 바로 오늘의 가나자와를 있게 한 원동력인 것이다. 부케야시키를 따라 걸어 나오면 바로 차야가이 길이 나온다. 물길 옆에 쭉 늘어선 상점들은 곧바로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다. 보통 30년 이상 된 가게들로 옛 방식을 고집하며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장인정신이 전통의 비법이다. 비닐우산을 들고 걷다보니 뜨거운 커피가 그리워 질 정도로 친근하게 느껴졌다. 우리 동네에 들어선 느낌을 주는 거리가 바로 가나자와의 물길 옆 골목길이다.

여기서 조금만 나오면 시내 중심거리로 오미초 시장이 있다.

과거 지역경제의 쇠락으로 침체일로에 있던 오미초 시장은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을 한다. 오미초 시장은 18세기 중반에 개설된 이래 280년 동안 가나자와와 함께 한 서민들의 대표적인 일상공간이다. 신선한 어패류를 판매하는 많은 생선가게와 채소류를 판매하는 청과상, 건어물·해산물 가게, 일용품과 의류, 음식점 등 170여 개의 점포가 늘어서 있다.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천장의 비가림 시설과 시장내부에 재개발 빌딩인 오미초시장관을 세웠다. 여기에 일본해(동해)에서 막 잡은 살아있는 게와 방어, 단새우 등을 판매하여 관광객을 끌어 모으면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끌고 있다. 나주지역에서 오랜 전통을 자랑했으나 지금은 사라진 영산포 오일시장이 생각났다. 근대거리를 만들겠다던 시책은 어떻게 된 것일까. 갑자기 더 궁금해졌다.



가나자와 시의 도심재생 성공의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철저한 지역자원을 활용한 도심재생 정책이다. 여기에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한 지역마케팅의 성공이 오늘의 가나자와를 있게 한 원동력이다.

가나자와는 30년 전부터 역사지구 보존과 역사경관 형성을 위해 독자적인 시책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1968년 '가나자와 전통환경보존조례'를 제정하였다. 바로 도심재생의 방향을 역사문화자원에 둔 것이다. 가장 가나자와다운 발상이자 특징을 살린 것이다. 여기에 사전협의를 통한 시민적 합의라는 원칙도 세웠다. 조례제정을 통한 관리와 사전협의를 통한 선 합의라는 기본원칙으로 역사경관 정책을 이어간 것이다.

가나자와는 제정된 조례를 근거로 역사문화경관 보존구역 내에서 고층건물 등의 건축행위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또한 특수 신축을 하게 될 경우에는 계획자가 실시계획서와 함께 경관자 기진단서와 시뮬레이션을 만들어 시와 사전협의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러한 정책으로 역사경관자원과 산업자원이 보존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도시로 변모한 것이다.

가나자와에 비하면 나주는 어떠한가.

곧 철거해야 할 방적공장을 활용하여 시민예술촌을 만들었던 가나자와에 비해 100년의 역사를 지닌 나주잠사 건물은 철거되고 영산포의 명물이었던 영산포역과 선창을 이어주던 애환의 구 다리(구 영산교)는 이미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또한 몇십년을 버텨온 오랜 창고건물과 상점 및 근대 건축물들도 제 모습을 잃어가는 등 산업자원과 역사경관자원은 냉대를 받고 있다. 역사문화도시를 표방하는 나주의 이미지와는 너무 동떨어진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람 냄새가 물신 풍기는 창조도시'라고 표현한 가나자와 시는 분명 우리 나주와 닮은 점이 많다. 역사문화 경관이 그렇고 산업자원이 그러하며 발달된 예술문화는 다른 도시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은 너무나 차이가 있다. 지역사원의 중요성을 살리고 지역자원을 활용한 내발적 창조를 이루는 가나자와는 분명 우리지역 나주에 앞서 있으며 많은 교훈을 안겨주고 있다. 아니 나주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김준 기자

najuk2010@najunews.co.kr

이번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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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의 집이 있는 부케야시키 물길 옆에서 프랑스 관광객인 두 남녀가 정답게 얘기를 나누고 있다. 가나자와에는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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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가 된 방적공장을 리모델링하여 시민들의 예술문화공간으로 재생한 시민예술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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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예술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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