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은행건물 하나로 도심재생에 성공한 '흑벽의 도시'

기존의 지역자원 활용에

주민참여가 성공의 열쇠

  • 입력 2011.12.15 13:49
  • 기자명 김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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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혼슈 시가현 북동부에 있는 나가하마는 도심재생에 성공한 지역으로 전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인구 8만 명의 이 작은 도시가 어떻게 세계적으로 연구대상이 될 만큼 성공을 거둔 것일까.

지역자원의 마케팅, 재래시장의 활성화, 주민참여 정책, 마을 만들기의 성공 등 여러 사례 등으로 우리 언론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취재경쟁이 붙은 지역이다.

역사문화관광으로 호남의 중심지였던 옛 영화를 재현하겠다는 우리 나주에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는 도시이다.

먼저 나가하마시의 지형적 여건을 살펴보면 동쪽으로는 이부키산계를 이루는 많은 산과 서쪽으로는 일본 최대의 담수호인 비와호가 있다. 주변엔 쿠사노강과 타카토키강, 아네가와강 등에 의하여 형성된 평야가 있다. 오늘의 나가하마가 형성된 것은 인구 5만의 옛 나가하마와 인근의 아사이정과 비와정을 합병한 2006년도이다. 이전의 나가하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축성한 나가하마성의 조카마치(일본에서 행정도시, 상업도시의 역할을 하였으며 성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도시였다.

나가하마는 400년이 넘는 역사와 한때는 교통의 요충지로 여러 산업이 발달하였지만 일본의 여느 도시처럼 70년대 이후 도심인구가 급속히 줄어들어 쇠퇴의 길을 걷는 공동화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쇠락의 길을 걷는 작은 도시가 외벽에 검은색 칠을 한 재래식 가옥들이 즐비한 옛 시가지를 '쿠로가베 스퀘어'라는 이름으로 재건하여 일본 최고의 도심재생도시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 지역경제의 활성화 정책에 지역자원을 도입한 역사 문화예술 활동의 사례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일본의 경우 이미 수십 년전부터 여러 지역에서 '마치즈쿠리' 즉 '마을 만들기 운동'을 통해 지역 정체성을 강화하는 한편, 침체된 지방의 경제를 활성화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실천함으로써 침체된 지역의 상권을 회복시켰다.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커뮤니티(소통)속에서 다양한 사업이 구상되고 지역주민의 취업을 통해 경제활동과 자립적인 생활기반을 확립해야 된다.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자기지역을 건강하게 하는 주민주도의 지역사업으로 주민 스스로가 지역의 당면과제 또는 생활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활동을 체계적인 사업으로 전환해 나간다.

나가노현의 오가와무라시의 '모두가 모여서 무언가 마을가꾸기를 해 봅시다'라는 슬로건 아래 지역의 향토식품이었던 오야키(두부구이)를 상품으로 '오가와무라노쇼'라는 회사를 만들어 인구가 적고 고령자 지역의 특성에 맞는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이루어냈다.

구마모토현 아라오시는 폐광으로 몰락한 도시를 '아오켄'이라는 상점 및 연구실로 상가재생의 거점 및 창업의 무대로 활용하여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나주와 비슷한 자연조건과 역사적 전통을 지닌 나가하마시는 1980년대 중반부터 '마을 만들기 운동'을 통해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하여 관광객을 유치하고 지역특산물을 홍보하여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이루었다. 여기에 그러한 성과에 기초하여 전문대학 유치, 실내야구장의 건설 등 여러 사업을 추진하여 지역주민들의 자긍심을 제고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나가하마시의 1988년도의 현실을 반영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 일요일 오후 1시부터 2시간 동안 나가하마시의 중심에 위치한 상가를 찾은 사람들의 숫자는 4명 그리고 강아지 1마리뿐이었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나가하마의 상점가는 주변지역의 중심상권 역할을 하면서 언제나 붐볐다. 상권이 쇠퇴하기 시작한 것은 고도성장기 이후부터 도시 교외지역에 들어선 대형매장에 고객을 하나둘 빼앗기면서 88년에는 상점가 곳곳이 문을 닫았다. 지역상권이 몰락한 것이다. 이때 위기감을 느낀 지역 유지 몇몇이 실태조사에 나선 결과 2시간 동안 지나간 행락객이 고작 4명이었다는 것이다.

그때 오늘의 '쿠로가베 스퀘어'를 이룬 신화가 탄생한다. 당시 중심가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던 지방은행 지점건물이 헐릴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상점 주인들은 "헐리면 우리도 마지막이다. 우리 손으로 사들여 상점가 활성화의 거점을 만들자"고 외친 것이다. 주민모두가 의기투합했다.

지역 활성화에 앞장섰던 사사하라 모리아키씨는 지역주민들과 함께 시당국의 투자를 이끌어내면서 제3섹터인 '주식회사 쿠로가베'를 설립한다.

지역 활성화를 목적으로 지자체와 민간이 합작하여 만든 기업인 제3섹터 '주식회사 쿠로가베'는 1억 3천만 엔의 자본금 가운데 시가 4천만 엔, 나머지 9천만 엔은 빌딩 임대업, 호텔, 건설업, 섬유도매, 술집, 신용금고 등 8개사가 분담했다. 사사하라씨는 출자 당시 시당국으로부터 민간주도로 제3섹터를 운영하겠다는 확약을 받았다.

관광개발과 유리공예를 주축으로 하는 제3섹터 '주식회사 쿠로가베'의 설립 후 곧바로 이사회에서는 검은 옻칠로 쿠로가베(검은 벽)라 불리던 다이햐쿠산쥬은행 나가하마 지점건물을 사들인 후 새롭게 단장했다. '흑벽의 도시'라 불리는 나가하마 시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사사하라씨를 중심으로 한 주민들은 먼저 지역자원을 활용한 마케팅을 생각했다. 나가하마만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경쟁력을 갖춰 지역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것이다.

나가하마의 영화를 되살릴 수 있는 대안으로 나가하마의 역사와 지역문화 그리고 유리세공을 제시했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나가하마와 전혀 관련이 없는 유리세공의 등장이다. 국제성을 함께 살릴 수 있는 종목을 찾던 중 그 연장선상에 유리세공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것이다.



민간이 주도하는 제3섹터

'주식회사 쿠로가베' 설립



일본식과 서양식을 절충하여 중후한 멋을 풍기는 쿠로가베 건물은 흑회반죽으로 만든 흰 창틀의 모던한 외관과 내부는 현관상부가 높은 천정으로 되어있다. 1층은 유리제의 액세서리나 생활용품 등을, 2층에서는 전 세계로부터 직접 사들인 유리제품을 전시판매하고 있다. 매장을 연지 2개월 만에 2만여 명의 관광객이 몰려들고 5개월 후에는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흑벽 1호관'인 '쿠로가베 글래스관'은 지역의 상권을 뒤 흔들었다. 활기를 찾은 중심가에는 이제 건물의 외형이 흑벽으로 바뀌고 일본식 전통가옥은 하나 둘씩 관광자원으로 탈바꿈했다. '4명의 사람과 1마리의 강아지'만이 거닐던 칙칙했던 거리는 관광객으로 붐비고 300백년이 넘도록 문방구점을 하는 가게도 유지되었다. 총 30개의 흑벽건물들은 공방, 유리예술품을 살린 레스토랑, 찻집과 음식점, 유리제품과 토산품을 파는 가게 등으로 각각의 모습으로 다시 탄생했다. 공방을 겸한 유리제품 공예전시관도 열었다.

나가하마는 '흑벽의 도시'라는 별칭처럼 도로도 흑색이다. 그러나 건물 모두가 흑색은 아니다. 마케팅차원에서 '흑벽'이라는 자원을 활용한 것이다. 30여개 밖에 되지 않은 흑벽건물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이다. 주민들의 노력과 열정이 바로 '흑벽의 도시'를 만들어냈다. 도심재생을 위한 주민들의 직접적인 참여가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이다.

나가하마현호북관광연맹의 노리코 코다마씨는 "우리는 쇠퇴해가는 지역을 살리고 도심공동화현상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기존자원들의 가치를 재활용하는 리모델링방식을 택했다"며 "박물관도시를 구상하고 히키야마박물관을 건설했다. 이 박물관이 나가하마의 역사길인 흑벽지구의 씨앗이 되었다"고 말한다. 히키야마박물관은 일본에서 '지역밀착형 박물관'의 모델이 될 정도로 유명하다.

또 노리코씨는 "마을을 살리기 위해 주민들은 개인의 땅을 내놓기도 하고 사유지에 골목길을 내거나 휴식공간으로 제공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면서 공동체를 이끌어냈다"면서 "쿠로가베 스퀘어의 탄생으로 나가하마를 찾는 관광객은 2백만 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흑벽1호관'을 중심으로 형성된 상가는 전주의 한옥마을과 비슷하다. 나가하마시의 대표적 사찰인 대통사를 중심으로 한 거리형성에서부터 작은 개울, 도로, 가로등, 일본 색이 완연한 주택 및 상점, 공예품판매장, 곳곳에 남아있는 신사와 문화유적, 박물관 등이 그렇다. 쿠로가베를 알리는 안내지도도 전주의 '뚜벅이 지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 오래되지 않고 많지도 않은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한 주민들의 노력과 아이디어가 지역 곳곳에 배어있다.

제3섹터 '주식회사 쿠로가베'는 수익금으로 직원들의 유럽현지교육에 투자하고 도시외관정비, 국내외와의 교류 등 지역발전에 앞장서는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젊은 여성이 활동의 주축을 이루며 유리를 주제로 한 시민대학 개최 등 지역사회의 환원사업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쓰러져가던 마을을 다시 되살린 것은 바로 주민들의 의지와 지역자원을 잘 활용한 정책에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사사하라씨의 말에서 잘 시사하고 있다.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 큰 돈 들여 대형 건물부터 짓고 보자는 태도는 위험하다. 도쿄를 모방하고 도쿄의 관점에서 봐서는 안된다. 우리 마을만이 가지고 있는 것, 누구도 모방하기 어려운 것을 살려 나가는 정신이 필요하다."

이는 지역사회의 고유자원을 활용한 지역의 특색사업 창출과 고용 확대에 초점을 둔 정책이 성공을 거두었다는 뜻이다.

김준

이번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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