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역사 학성군 이야기는 "김덕령 장군이 성이 있었소, 그 둘째여, 또 누님이 있었던가는 모르겄소만."하며 시작하였다. 이 이야기는 다른 지역에서는 김덕령이야기로 전승되기도 한다.
(1) 영암역사 학성군과
누님 이야기
영암 서호면에 김해 김씨에 김 학성군이라는, 나라에서 군(君)자를 받은 그런 훌륭한 분이 있었는데 바로 김덕령의 형이었다.
학성군은 전쟁과 같은 것은 하지 않았지만, 장군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힘이 센 역사(力士)였다. 그가 열 칠팔 세에서 이십 살쯤 되었을 때, 기운이 발천하여 사방의 씨름판이고 어디고 막 돌아다니면서 상으로 황소를 휩쓸어오곤 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으면 상대를 그냥 막 힘으로 밀어부쳤다.
학성군에게는 누님이 한분 있었는데, 누님은 이런 동생이 걱정이었다. "저러고 댕이다가는, 어딘가 누구한테 한 번 당헐 수 있지 않냐? 생명이 위험헐 때가 있을 꺼이다. 그러니 저 놈을, 저 거시기를, 기를 쫓어서, 잡어야 쓰겄다."
그렇게 생각하고 하루는 남장을 하고 씨름판에 가서 동생을 이긴 후 집으로 돌아왔다. 씨름에 진 학성군이 막 화를 내며 집으로 들어왔다. 그런 동생에게 누님이 왜 그러냐고 물었다. 학성군은 "아이, 나 세상에 오늘 어떤 놈헌테 씨름에 져부렀다고. 그러니 내가 지금 부애가 나서, 그 놈이 어떤 놈인가 내가 한 번 찾어가서 다시 가서 씨름을 해 보던지, 내가 분풀이를 해야지 기냥 못있겄다, 못지내겠다."고 하였다.
누님은 "네가 그러고 다니다가는 한번 혼날 때가 있을 것 같아. 그렇게 너모 기고만장해가꼬 댕이먼 못쓴다."고 하며, 자기가 동생 기를 죽이려고 남장을 하고 씨름판에 갔었다는 말을 하였다.
학성군은 도저히 이를 믿을 수 없어 누님에게 다시 씨름을 해보자 하였다. 그래서 둘은 다시 씨름을 벌였는데, 학성군은 누님에게 꼼짝 못하고 졌다.
그러니까 누님이 동생에게 "봐라. 세상에 나 우에, 누가 없을 것 같아도 다 있어. 니가 그렇게 허고 댕이다가는 까딱허먼, 큰 일을 당할 것이여. 생명이 위험헐 수도 있으니께, 절대 그런 힘 장난, 완력 장담허고 댕이지 마라."고 타일렀다.
그 후로부터 학성군은 힘자랑을 하지 않고 다니게 되었다.
학성군 김완(1577~1635)
본관은 김해이고, 자는 자구(子具)이며, 시호는 양무(襄武)이다. 영암에서 태어났다.
1615년(광해군 7) 관무시(觀武試)에 급제, 고산첨사(高山僉使) 등을 거쳐 창성방어사에 이르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평정에 원수 장만(張晩)을 도와 공을 세워 진무공신(振武功臣)에 책록, 학성군(鶴城君)에 봉해졌다. 이어 훈련원도정(都正) ·황해도병마절도사를 지냈으며,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