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종삼의 나주이야기

(1) 충열공 시호를 받은 나덕헌

  • 입력 2011.12.16 11:30
  • 기자명 나주신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주 나씨에, 호는 금호고 시는 선비 사(士)짜 잠길 침(沈)짜. 사침인디, 그 아들이 육형제에 딸이 둘이 있어라우. 그런디 아들 육 형제가 다 대과를 했어. 그래가꼬 속칭 육룡이다, 그러제. 나주 나씨에, 파가 여러 파가 있는디. 항렬이 덕짜 항렬이여. 그런께 육덕 자손이라고도 허고, 육룡 자손이라도 허고 두 가지로 말허는디. 이 세상 사람들이 나주 나씨에서는 육덕 자손, 육룡 자손이 제일 잘 되았다 해서, 같은 나주 나씨라도 육룡 자손을 더 알어준다, 이런 말이 있어요. 할아버지 나덕헌은 육형제, 육룡 중에 제일 끝에 막둥이 아들이어라.

그런디 병자호란이 나서, 청국 왕 홍타시가 인자 조선 왕한테 항복을 받고 했는디. 그런께 인자 항복을 허자는 신하와 반대허는 신하가 그자 두 갈래로 있었어요. 근디 그러고선 나 항복 받은 뒤에 반대헌 신하들은 인자 문초를 허고, 인자 나중에 본국으로 돌아감서 데리고 들어가기도 허고 여러 가지로 벌 준디. 아, 나덕헌이란 사람이 안 나타나거던이라우. 내 선조여. 나덕헌이란 사람이 안 나타나니까, 홍타시가,

"아, 나덕헌은 어디 갔냐?"고 그러니까,

"나덕헌은, 거시기 먼저 심양, 그 인자 청나라에 사신 가가꼬 안 왔다."고 말이여. 그런께는 홍타시가 허는 말이, "아, 그 때 와서 허고 갔는디 어찌 왜 안 해냐? 보냈는디 왜 안 해느냐?"고, 그러거던.

그런께 어쩐 일이 있었는 고이는, 심양서 가서 사신을 갔는디 청나라에서 나덕헌헌테 무엇을 요청헌고이는, "조선도 우리 청나라 같이, 옷 입는 제복이나 모든 그 행동, 예의 범절을 우리 청나라 같이 해라."

그러거던. 그런께 나덕헌이란 사람이, 그 반대했어요.

"못 허겄다. 그럴 수가 있냐고, 우리나라도 우리나라의 예복이 있고 법이 다 있는디, 그럴 수가 없다."

고 반대헌께. 늘 인자 그거를 구원을 허고이 강권을 헌단 말이여.

그래도 절대 인자 거절했지요잉. 거절허니께 기양, 거절헌다고 항복허라고 그냥 거시기 저, 뭣 짚 섬 짓으는 거시기다가 나덕헌을 담어 놓고는 기냥, 노전 밭 삼십 리를 끄집어 버렸어요. 항복허라고. 그 고욕을 줬어. 노전 삼십 리라고를. 깔대밭, 비어낸 깔대밭, 끌텅. 삼십 리. 그걸 막, 말이 삼백 리라고 헌디, 삼백 리라는 이애기가 있어가꼬는 그러는디. 막 끄집을 때, 갈대가 쑤시고 헐 때 오직이 고욕이 심허겄소? 그래도 항복을 안 해.

그런께 과연 충신이라고. 충신이라고, 자기 나라를 위해서 그렇게 목심을 걸고 항복을 안 허니 충신이라고 허먼서. 거그서 어떻게 정부에서, 그 인자 청나라 정부에서 뭐라헌고이는. 중국 역사에, 옛날 소모라는 사람이 있었어, 소모. 그 사람이 아조 중국 사기에 유일무이한 충신이었어라. 둘도 없는 하나 밲에 없는 그런 충신 말을 듣고 아조, 그 온 천하에 인자 이름 있는 사람인디. 옛날 소모보덤 더 낫다, 이런 충성이 옛날 소모보덤 더 낫다. 그렇게 인자 정부에서도 그렇고 그 심양 사람들도 그렇게 평을 했어라우. 그 소문을 듣고 인자 거기 사는 궁인들은 인자 소문 듣고 인자 허는 이애기제.

그래서 인자 본국으로 가라 했는디, 여그 조선서 거시기가 있어요. 연락 있어. 가서 인자이, 물론 여그서 갈 때도, 청국 사신으로 가라고 헌께, 누가 갈 것이냐 헌께 서로 마다해요. 왜 마다허냐, 가먼 이런 그 참 어려운 문제를 내가꼬 인자 승낙하라고 말이여이, 헐성 싶은께 서로 안 갈라고 혀. 그런께 저 우리 선조 나덕헌이 보고 가라 헌께는, 가겄노라고. 그래 갔어요. 가니까 아닐까 그렇게 그런 곤욕을 당했단 말여.

그래서 인자 본국으로 나가라고, 인자 항복 안 헌께 본국으로 가라고 했는디, 여그 조선서 그런 소식을 알어요, 늘. 가끔 늦어서 들어. 듣고는 못 나오게 간신들이, 인자이 상감한테 왕한테 말해가꼬는, 말허자먼 거그 가서 말여 뭣을 인자 청나라 역적헌 것을 이렇게 승낙허고이, 이렇게 이렇게 말허자먼 반역했다고, 못 나오게 그렇게 딱 맨들어 버렸어요.

그런께 여그서 들어오란 말, 들어오라고도 안 헌디 못 오지라잉. 어디 말고 거 가서, 만주 가 있으라고 해부린께, 여그서 그런 연락이 간께, 그래 안 들어오고 거가 그대로 심양 가 있든갑디다. 청나라에 가서. 그래 청나라 정부에선 모르제. 가라고 보냈은께 갔는갑다 했제. 그래서 청나라 왕이 나덕헌을 찾은께, 없어요. 그런께,

"왜 없냐? 어째서 나덕헌이 없냐?" 헌께,

"죽었냐?"헌께,

"죽던 안 했다."

그래. 조사해본께 그렇게 생겼거든요. 그래서, 홍타시가 그런 이애기를 다 했어요.

"나덕헌이 이러이러헌 충신이다."

그래서 그 때사 인자 나라에서 알고는 충자 시호를 줬어라. 충자 시호를 받었어. 충열공이라고, 충열이라고. 충자 시호를 받었어. 시호가 충열공이제. 함자는 큰 덕(德)짜, 법 헌(憲)짜.

저작권자 © 나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