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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으로마을주민들을
바꾸다
메뚜기 마을은 어떤 마을인가?
■ 일찍 귀향한 황보병권 위원장
■ 일찍 눈뜬 친환경 농업
김준 기자  |  najuk2010@naju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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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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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 마을은 1997년 친환경농업육성법이 제정되고, 이 마을 이장을 역임했던 황보정남 구룡포농협 조합장이 "농지가 적은 메뚜기 마을이 변화하는 농업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친환경농업으로 가야한다"는 설득으로 무농약ㆍ유기농업을 시작하면서 친환경농업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메뚜기 마을사람들은 대부분 쌀과 양파를 재배하고 있으며 친환경농업을 위해 벼를 심은 논에는 우렁이 농법을 사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오리농법도 했지만 오리의 사료에 항생제 등이 들어있어 지금은 우렁이 농법만 사용하고 있다.

평균 나이가 70세인 메뚜기 마을에서 모든 주민이 친환경 농업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황보정남 조합장과 황보정권 위원장은 농사를 짓기 어려운 노인들이 친환경농업에 동참할 수 있도록 논을 갈아주는 등 일손을 거들어주고, 경작자는 친환경 비료나 약제비용만 부담하도록 했다.

더구나 농지가 적은 메뚜기 마을 주민 대부분이 농산물을 자식들에게 보내주는 등 자가소비하는 양이 많기 때문에 주민들을 설득하기가 쉬었다고 한다.

"우리가 먹을 식량이고 자식들이 먹을 쌀에 농약을 하면 결국 자식들에게 병을 주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설득이 주효했다. 월남전에서 얻은 고엽제 피해에 대한 얘기를 들은 주민들은 제초제가 바로 고엽제와 다를 것이 없다는 마을 지도자들의 설득에 모두들 친환경농업에 동참하게 되었다.

포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제대한 황보정권 위원장은 직장도 포항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직장생활 1년 만에 고향에 내려가서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마음먹고 과감하게 사표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황보 위원장의 부모님은 한 때 머슴을 두고 농사를 지을 만큼 농지가 많았고 고향으로 돌아올 당시 8천여 평의 농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메뚜기 마을의 농지는 모두 수리시설이 좋지 않아서 가물 때는 농사를 짓지 못하거나 가까운 샛강에서 논에 물을 길러다 모내기를 해야 했다.

황보병권 위원장은 고향에 돌아오자마자 경운기와 양수기를 구입했다. 양수기가 생기고 가물어도 모내기를 하지 못하는 일은 없게 되었고, 소를 이용해 논갈이를 했던 방식에서 경운기를 사용하면서 일의 효율성은 몇 배로 높아지게 되었다.

벼를 베서 다시 탈곡을 하는 방식에서 논에서 직접 탈곡하는 탈곡기를 구입하여 농사가 훨씬 수월하게 한 것도 황보씨가 가장 먼저 시작했다. 나이 드신 노인들도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된 것은 논을 갈아주고, 벼를 탈곡해주는 일을 대신 해준 황보 위원장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가장 적은 투자로 높은 효율을

2004년 농촌체험마을에 선정된 메뚜기마을은 국비와 지방비 2억3천만 원을 지원받아 체험관을 건립했다. 2005년에는 농협중앙회로부터 팜스테이 마을로 지정되어 5천만 원을 지원받아 펜션동을 지었다.

구룡포항이 5분 거리에 있어서 동해안을 찾는 관광객이 민박을 위해 찾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이 마을에 농촌체험을 위해 찾는 사람들이 연간 1만여 명을 넘고 있다.

더구나 체험객 가운데 이 마을을 다시 방문하는 비율도 매우 높아 절반에 가까운 편이다. 경북도청 수질보존과, 대구은행, 포항제철 협력회사인 포우산업, 2.800세대인 삼우아파트 등과 1사1촌 자매결연으로 이들 회사마다 연간 4회 이상 마을을 방문하고 있다.

봄에는 자연생태체험, 쑥떡만들기, 양파캐기, 감자심기, 모내기 등을 체험하고, 여름에는 오디따기, 은어. 미꾸라지잡기, 반딧불체험 등을 가을에는 도토리묵 만들기, 메뚜기잡기, 고구마 캐기, 고추따기, 알밤 줍기 등을 하고, 겨울에는 신년 해맞이, 정월대보름 쥐불놀이, 팽이치기,연만들기, 짚풀공예, 메주된장 김장담그기 등의 체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계절에 상관없이 분재만들기 체험, 전통떡·순두부만들기, 사물놀이, 서당체험, 봉화산등정, 도자기, 천연염색 체험 등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농민들의 생각을 바꾸다

성동 메뚜기 마을 지도자들은 경북농민사관학교에서 농촌마을 지도자 과정을 이수하였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외부 강사를 초청하여 연간 20시간의 교육을 했다. 교육의 주 내용은 서비스 정신 함양으로 마을을 찾는 체험객을 평생고객으로 생각하고 물심양면으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것이다.

강원도, 전라도 경남, 충청도 등 전국의 농촌 체험마을을 견학하여 장단점을 분석하고, 체험마을 운영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실수를 줄인 것도 성공 비결의 하나다.

포항시와 농협 등의 지원도 큰 힘이 되었다, 마을 주민 10여 명이 일본 등 선진지 견학을 다녀오고, 14명은 고양에 있는 농업대학을 이수했다. 이런 교육으로 인해 마을 주민들은 생각을 바꾸고, 환경친화 마을로 만들어갔으며 하나의 실천과제로 주민 모두가 금연에 성공하기도 했다.

이 마을을 찾은 체험객들은 마치 친정집이나 고향의 부모님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하고, 돌아갈 대도 고구마며 양파 등 이 마을에 특산품들을 한보따리씩 싸준다.

다시 찾아올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다. 더구나 고향에 부모님이 안 계시거나 친정 부모님이 돌아가신 도시민들은 새로 친정이 생기는 것과 같다. 메뚜기 마을의 성공은 다른 무엇보다 이 마을을 체험객의 친정으로 만든 것이다. 민박에 참여하는 농가는 18가구다.



함께 한 마을지도자들

메뚜기 마을에 친환경 농업을 시작한 사람은 당시 마을 이장이었던 구룡포농협 황보정남 조합장이다. 농업에 획기적인 변화가 없이는 농촌이 살아나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친환경농업을 권장하여 마을 주민 모두가 친환경 노업에 동참하게 만들었다.

귀농 1세대라고 자부하는 황보찬 체험마을 사무국장은 84년도에 귀농하여 녹색농촌체험마을 함께 이룬 사람이다. 경주에서 출생하여 군대를 제대한 뒤 성동 메뚜기 마을로 귀농한 그는 소나무 분재와 유기농 콩으로 전통 메주, 간장을 담가 농산물 가공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

4년 전에 귀농한 이갑종씨는 산하촌이라는 찻집과 도자기 체험장, 천연 염색 등을 하고 있다. 마을 체험장은 20명 이상 체험객이 주로 찾는 반면에 이 곳은 가족 단위의 체험객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도자기를 전공한 그는 이 곳에서 체험마을과 상생하며 메두기 마을의 체험프로그램을 더욱 알체게 만들고 있다. 김준기자

이번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인터뷰>▲ 황보씨 일가들이 자자일촌을 이루기 때문에 장단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황보병권 : 단점보다는 장점이 훨씬 많습니다. 작은 일에도 서로 상의하고 일단 합의된 일은 누구도 불만 없이 함께 동참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일가들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민박에 참여하지 않는 가구에는 어떤 혜택을 주게 되는가요?

황보병권 : 부녀회에서는 음식을 담당하고, 체험관 지도사들은 돌아가며 체험객들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식사를 담당하는 부녀회원들에게 일당으로 4~5만 원을 지급하고 체험지도사들에게도 일당을 주고 있습니다. 개인에게도 이익이 가도록 분배하고 있습니다.

▲ 농산물판매는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황보병권 : 우리 마을은 농지가 많지 않아 대량생산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쌀 20kg에 6만 원씩을 받고 있습니다. 양파, 고구마 등도 대부분 체험객들을 중심으로 직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 체험마을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황보병권 : 오픈 된 마인드와 주민들의 변화 그리고 행정기관 등과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결코 농촌은 살아날 수 없으니까요.





--------------------------------[본문 3:2]-----------------------------------



작은 마을공동체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실천한 사람들이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역사회에 대한 꿈의 실천으로 삶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마을에서 공동체성과 공공성을 잘 구현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았다. 모두가 농촌은 힘들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가운데 척박한 곳에서 희망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작은 원동력이 되었으면 한다. 함께 농사짓고 서로 돕는 우리의 전통양식을 새롭게 접목하면서 시작한 공동체의 삶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조직하여 참여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전파해나가는 과정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편집자 주-

--------------------------------[본문 3:3]-----------------------------------



경북 포항시 구룡포읍 성동리 메뚜기 마을. 한반도 지형의 꼬리 끝인 호미곶 입구에 위치한 이 마을은 계유정난 때 단종을 보필하다가 수양대군에게 살해된 황보인(皇甫仁)의 후손들이 자자일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마을에는 황보인과 그의 아들인 황보석ㆍ황보흠을 배향하고 있는 광남서원이 있다. 황보인은 1452년(문종 2)에 영의정이 되어 문종의 명을 받들어 단종을 보좌하다가 1453년 계유정난 때에 김종서와 함께 수양대군에게 살해되었다. 아들 형제와 손자도 함께 화를 입었으며 오래 동안 신원되지 못하다가 숙종 때 복관되었다.

메뚜기 마을에 사는 황보씨 일가들은 단종임금에 대한 충심을 버리지 않고, 지조를 지킨 황보인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다. 메뚜기 마을 40여 가구에 70여 명의 주민들은 대부분 황보씨 일가이거나 이 마을 황보씨의 딸과 결혼하여 들어온 사람들이다.

메뚜기 마을 주민들이 다른 마을보다 단합과 협동심이 남다른 이유는 이런 혈연관계가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황보정권 위원장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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