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평장에서 만난 이소래 할머니

옥신각신 흥정 속에 흥겨움 가득

  • 입력 2013.07.22 13:44
  • 기자명 김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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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냄새가 풀풀 묻어 나는 곳,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넘쳐나는 곳, 훈훈한 인심이 보태져 마음까지 넉넉해지는 삶의 장터, 바로 5일장이다.


나주의 3대 5일장(영산포풍물시장·목사고을시장)중 하나로, 남평읍에서 5일 마다 장이 열린다. 한때 1년에 5,000두 이상의 소가 거래되었을 정도로 유명한 우시장이 섰으나 현재 우시장은 사라졌다. 또 하루에 3,000가마니 정도가 거래되는 싸전으로도 유명했으나, 현재 싸전은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광주시와는 차로 20여 분 거리에 있어 옛날에는 광주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 지금은 나주시 남평읍 주민들과 인접한 지역 주민들이 주로 이용한다. 장날은 1·6·11·16·21·26일이다.


지난 16일 오후 2시 남평장으로 잰걸음을 재촉했다. 주름진 우리의 어머니들, 풍요로운 땅을 지키고 온 할머니들도 5일장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그곳에서 이소래 할머니(73세. 남평읍 죽림리)를 만났다. 강렬한 햇볕이 내리 째고 있었다. 검정 그늘막 하나로 그늘삼아 좁은 골목에서 삼삼오오 옹기종기 모여 앉아 노점상을 펼치고 있었다.

겨우 한사람이 지나갈 정도의 공간으로 좁은 골목이었다. 이소래 할머니도 이 골목에서 담벼락에 등을 대고 낮으막한 의자에 앉아 고구마 줄기의 껍질을 벗기고 계셨다. 어제 아침 일찍 밭에 나가 수확한 나물 등을 들고 나왔다. 장에 나온 시간이 새벽 5시다. 장에 새벽부터 나와 직접 밭에서 재배한 고구마 줄기, 오이 등을 갖고 나와 팔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종일 장사해도 겨우 3-5만원정도란다. 장에서 작물을 팔기 위해서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밭으로 나간다. 요즘 무더운 날씨 탓에 이른 새벽부터 바삐 움직인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이 할머니의 어깨의 무게는 우리가 상상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 할머니는 23년 전에 남편을 먼저 떠나 보내야 했다. 이후 홀로 5남매를 키우고 결혼시키기까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의 세월을 보냈다. “먹고 살기기가 힘들어 죽고 싶은 생각도 많이 했어요. 막상 그렇게 하지도 못했어요.”


이미 장성해 결혼한 자식들은 먹고 사는 게 바뻐 어머니 집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겨우 전화로 안부를 묻는 정도라고. 힘겨운 삶의 여정을 이어가고 있는 이 할머니는 매주 병원비와 약값으로 3만원정도 들어간다. 다리가 아파서 일주일에 2번정도 병원에 다니고 있기때문이다.

“우리는 못살고 힘들어도 자식들만큼은 건강하게 잘 살았으면 해요” 소박한 소망을 전했다.
한편 이 할머니는 마을 교통편이 불편하다고 하소연 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죽림에 버스가 안들온다는 것이다. 지금의 노선에서 버스로 3분이면 마을입구까지 들어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걸어서는 50분이상이 걸린다고. 이 할머니는 다리가 아파서 제대로 걷지 못한다.

“예전에 비해 도로포장이 잘되어 있습니다. 마을입구에 정류장처럼 만들어 져 있지만 버스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한숨을 내쉰다. “2-3명의 노인들이 모여 택시를 불러서 읍내로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며 “버스가 들어왔으면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하루속히 버스가 배정되어 이 할머니의 시름이 한결 가벼워지길 기대해 본다.

 
그래도 5일 장을 통해 나주사람들의 역사, 질퍽한 우리네 삶, 훈훈한 인심, 살아가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 나주를 오감으로 느끼고 싶다면 5일장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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