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간이역, ‘남평역’

여행자라면 한번쯤은 찾는다

  • 입력 2013.08.05 14:52
  • 기자명 김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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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이라도 사람들도 많이 살고 어린아이들도 역전 앞 에서 뛰어 놀던 역이었는데 지금은 이제 그저 간이역으로 남아 있는 곳. 한여름에는 참매미가 한 없이 울던 곳이고, 겨울에는 눈 내리는 역사에 풍경이 제법 운치가 있는 곳.
광주방향에서 차로 20여분 오면 남평읍내로 진입하기 전 다리 앞 삼거리에서 남평역(전남 나주시 남평읍 동촌로 313(광촌리 549)번지)까지 3km 남짓한 거리다.


죽산 안씨의 재실이 있는 수청마을 지나 도로를 가로지른 마을 숲이 눈에 들어왔다. 풍강마을의 우량 숲이다. 우람한 느티나무와 팽나무, 서어나무 등 37주의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서 잠시 쉬어 가도 좋을 듯 하다. 광촌분교를 지나 빛바랜 청색 표지판을 따라 시선을 집중시켰다. 너른 역 광장이 허연 생살을 무방비로 드러내고 있었고 광장 뒤편 가운데에 조성된 작은 화단에는 꽃과 나무들이 가득했다.

굵은 나무 사이로 파란 지붕에 하얀 벽면을 한 남평역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광장 한쪽으론 장독대가 나란히 있고 중간 중간 조각품 같은 것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2012년 12월에 조성된 ‘티월드 갤러리’였다.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 배경역, 전국에서 제일 아름다운 간이역 남평역”이라고 적힌 나무 명패가 눈에 띄었다.


남평역,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렀을 역이다. 실상 사평역은 남광주역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이곳 남평역을 곽재구의 사평역으로 알고 있다. 사평역이란 결국 세상 어디에도 없는 시에 나오는 상상의 공간임에도 사람들은 그 실체를 눈으로 확인해야 의심을 거두고 만족할 줄 알게 된다.


곽재구가 시에서 읊은 곳은 전라선의 어느 후미진 간이역이다. 이 작은 역에서 그가 지핀 삶과 추억의 순간들은, 우리의 깊은 정서에 닿아 생생한 아름다움으로 우리들의 가슴을 적신다.


햇볕이 내리쬐는 대낮의 기차역에서 그 쓸쓸함과 아름다움의 느낌은 분명 다르겠지만, 인적 하나 없이 폐역이 된 이 정적 가득한 작은 간이역. 역사와 승강장으로 이어지는 짧은 거리는 정원으로 꾸며져 있었다.

역사는 이례적으로 건물의 정면이 철로 쪽을 향해 있으며 건축 형태가 다양하게 나타나 있다. 광장 쪽의 건물 후면은 형태가 비교적 단순하다. 돌출된 역무실은 추녀마루가 경사지게 올라가 용마루에서 모이는 모임지붕인 것이 특징이다. 지붕은 주름 함석으로 이루어졌지만 증축 부분은 패널형 지붕재를 사용했다. 대합실 왼쪽으로 나 있는 창문은 원래 목재 창호였던 것이 알루미늄 섀시로 바뀐 것이다.


역사 안을 보려고 창문에 얼굴을 바짝 붙인 채 안을 들여다봤지만 햇빛에 반사된 유리엔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 역과 오랜 시간을 함께했을 아름드리나무 몇 그루와 누군가 톱밥을 던져 넣었을 녹슨 난로와 의자 하나가 하염없을 뿐이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이지역의 사람들에게는 만남의 장소이며 이별의 장소였을 남평역에는 세월의 무상함만 느끼게 된다. 이곳을 이용했던 수 많은 사람들은 다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남평역은 1930년 12월 간이역으로 문을 열어 광주와 화순의 중간지점에서 교통이 불편한 인근농촌 사람들에게 다리역할을 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명맥을 유지하다가 1950년의 여·순 반란사건때 역을 잃고 1956년에 신축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또 2006년 12월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 299호)으로 지정됐으며, 세월이 흘러 도시의 발달로 인해 급속도로 농촌 인구가 빠져 나가면서 2011년 10월 5일에 여객 취급을 중지해 지금은 사람은 오르내리지 않고 하루 몇 차례 기차가 이곳을 지나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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