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빠 휴가가요’

  • 입력 2013.08.12 09:10
  • 기자명 박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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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잘 보내셨습니까.” 집에 함께 사는 그녀가 휴가를 주말과 정기휴무까지 합쳐서 10일을 받아왔다. 덕분에 화순, 담양, 무주를 돌아 나주투어까지 마쳤더니 쉬는 것이 쉬는 게 아니다. 그래도 평소 일에 치여 가정에 소홀한 죄로 이번 휴가 때는 가정에 충성했더니 마음은 편안하다.


나주의 휴가철 풍경을 살펴보니,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서는 아침부터 아이들을 데리고 물놀이 가는 준비를 하고, 오랜만에 시골에 내려온 청년들은 부모를 도와 농사일도 도우고, 손자들과 놀이터에서 놀아주는 할아버지도 있고, 서울에서 내려온 친척들과 나주구경에 나선 이들도 보인다.


가정을 꾸리기 전에는 휴가란 것이 내 몸 하나 편히 쉬고 놀 곳 찾아 떠나는 것인 줄 알았더니, 내식구들을 챙기라고 하늘이 만들어준 기회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 노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고 그녀의 물장난에 당해도 주고 친구들 말장난에 술도 술술 이다.


이렇게 좋은 시간을 보내면서, 휴가철에도 근무하는 사람들 소식을 접할 때는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다. 나주에도 그런 분들이 많다는 말을 들어서다. 그중에 한 그룹이 환경미화원이다. 이들은 새벽에 차량으로 쓰레기 수거를 마치고 나면 각자에게 할당된 거리의 일정구역을 청소해야 한다. 그런데 본인이 휴가를 가면 다른 근무자가 그곳까지 책임져야하기 때문에 휴가를 갈 수가 없다. 본인 때문에 고생하는 동려에 대한 배려이다.


며칠 안 치우더라도 그냥 휴가를 가면 안 되냐고 물었더니, 거리는 며칠만 안 치워도 금방 지저분해지고 민원도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깨끗해서 몰랐는데 쓰레기가 아직도 많이 버려진 다는 것에 놀랐고 민원이 속출한다는 말에 또 놀랐다. 현재 상황으로는 특별한 대안이 없다. 공공근로 인력을 그쪽으로 대체하는 것이 그나마 대안인데 그도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들도 가정이 있고 일하는 노동자인데 휴가는 꼭 필요하다.

예전에 백화점에서 일하는 여성이나 마트의 계산원들의 하지정맥류가 심각한 사회문제도 대두됐던 적이 있다. 대부분의 근로시간을 서서 일하기 때문에 그 고통은 경험해본 이들은 모두 이해한다고 한다. 이에 민주노총에서 회사 측이 의자를 비치해 줄 것을 요구했고 일부 사업장을 이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주축협마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이 의자는 곧 무용지물이 됐다. 첫째는 이미 설치된 계산대의 구조가 앉아서 일하기에는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것. 둘째, 고객은 직원이 앉아서 맞이하는 것을 곱게 안 본다는 것이다.

첫 번째 것은 시설비를 투자하면 해결되는 부분이지만 두 번째는 의식이 변해야 해결가능하다. 백화점 판매원이나 마트의 계산원들은 다수가 여성이다. 이들은 모두 우리주변 누군가의 딸이자 며느리이며 엄마들이다. 또 내 아내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잠깐 마주치는 그녀들이 의자에 앉아있다고 해서 심기가 불편할리 있겠는가. 내 딸이라면 되려 “서있으면 힘들 텐데 앉아쉬어”라고 말하는 것이 우리네 어머니 마음 아니던가. 조금만 마음을 바꾸면 쉽게 풀 수도 있는 문제다.


서로를 이해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지만 이런 차원으로 나주의 환경미화원의 휴가문제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우리 아빠 휴가가요. 이번 주는 길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라고 쓰인 캠페인 현수막이 거리에 걸리고 자랑스러운 나주시민들이 이를 따라 주는 상상을 해보고 있다. 오늘도 밖은 37-8℃ 넘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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