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흐르는 것

  • 입력 2013.09.30 13:26
  • 기자명 양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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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가위 명절은 연휴 내내 나주 회진이 낳은 16세기의 대표적인 시인이며 소설가 백호 임제선생과 함께했다.
지지부진한 공사로 어려움과 난관속에서 지난 4월 백호문학관이 풍강 언덕에 있있던 선생의 생가터에 개관했다.
전국의 문학동호회와 작가 협회 등 많은 사람들이 조선 최고의 풍류남아, 나주가 낳은 대문호 백호선생을 만러

들러 주었다.
35세에 평안도도사가 되어 부임하는 길에 개성을 지나다가 미모와 재주로 당시의 명사들을 희롱했던 황진이의 무덤을 지나칠 수 없어 그녀의 죽음과 인생무상을 읊은 시조 한수를 지었으니 이는 널리 인구에 회자되고 있고 현재의 우리는 국어교과서에서 이를 접하고 있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나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설워하노라

사대부 출신으로 벼슬하는 관료가 천한 기생의 무덤에 닭 한 마리와 술 한 병을 들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는 것은 엄격한 계급과 형식에 얽매인 중세 봉건 사회에서는 흥미진진한 얘깃거리가 아니라 벼슬아치와 선비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이일로 파면까지 당했다고 했는데 사실은 쫓겨난 것이 아니라 서울로 올라가 예조정랑 벼슬을 지냈다.
이 부분에 후손들께서 신신당부하신다. 많은 사람이 잘못 알고 있다면서 우려를 나타내시면서 정확한 사실을 설명해주라고......


백호선생은 변방의 외직에 계시며 오랑캐땅을 평정하고자 하는 호연한 기상을 읊은 시, 팔도를 두루 돌아다니며 평양의 기생 한우와 수작에 머물지 않고 풍류 넘친 화답시조 한우가, 평양감사의 수청도 거부했던 일지매와 거문고와 옥퉁소를 불며 정담을 나눈 얘기, 수성지, 화사, 원생몽유록 등의 한문소설 등 백호 선생이 남긴 국문학사의 업적은 넘치지만 스토리가 있는 관광을 즐기는 세대에 사랑이야기는 로맨틱한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전국을 다니면서 사대부와 기생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많이 듣게된다.
충주호 유람선을 타면 조선의 대유학자 이황선생을 사랑했던 단양의 기생 두향의 묘를 지난다.
시문과 서화에 뛰어났고 매화, 난초를 사랑했던 18살의 여인은 퇴계선생을 만난 이후 일편단심이었다.


단양군수를 마치고 떠난 퇴계선생은 한번도 두향을 찿지 않았다. 선생 사후 함께 시를 말하고 인생을 논했던 거북바위 옆에 묻어 달라했다. 댐 건설로 수몰될까봐 현재의 장소로 이장했다.
부안에 가면 얼굴은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재주가 있고 정이 많았던 기생 매창과 허균의 이야기가 전한다.
기생이었지만 남녀의 성을 넘어선 교분을 쌓은 주인공들이다.


경기도 파주에 가면 묏버들 가려 꺽어 보내노라의 함경도 경성 기생 홍랑의 무덤이 해주 최씨 문중선산에 버젓이 있다.
기생이면서 사대부 족보에도 올라 있다. 고죽 최경창과 홍랑의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가 그들의 애틋한 삶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뭉클한 감동이 되어 돌아온다.


고죽과 백호는 남원 광한루에 올라 시회를 같이 열기도 했던 지기이기도 하다.
이들의 만남은 짧았다. 행복도 잠깐이었다. 하지만 사랑은 길었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는 애가 끓고 절절하다.


가을이다.
옛말에 가난한 친정보다 오곡백과 익어가는 가을 들판이 좋다했다. 청명한 가을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떠나기 좋은 시절, 영산강가 정자여행 권해본다.


대숲 우거진 세지 금천변의 벽류정에서 조상들의 편액과 주련감상을, 겨울에도 시들지 않은 숲과 사철 피는 꽃들이 항상 봄을 간직한 듯하다는 다시면 화동의 장춘정, 4백년 푸조나무의 당당함속에 4성문중의 역사속으로 들어가는 노안면의 쌍계정, 남평읍 드들강 솔밭유원지의 탁사정에서 안성현 시인의 엄마야 누나야를 원곡으로 불러보자.


다시면 석관정에서는 영상강의 유려한 곡선을 감상하고 이별바위의 가슴 찡한 전설도 들어본다.
“임제선생과 황진이는 만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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