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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다듬는 평화이발관을 아십니까반백년 이발관과 인생을 함께한 손옥현 옹
이신재  |  jae70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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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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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포 삼거리에서 용산 주공아파트 쪽으로 가는 길목 한편에 이발관이 보인다. 참 정직한 글씨로 써진 평화이발관. 이곳엔 반백년 가까운 세월동안 이 자리를 지키며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를 손질해온 이발사 손옥현(86)옹이 살고 있다.

1928년 전남 고흥군 남양면 장담리에서 태어난 손 옹은 당시 일제 강점기 시대에 유소년기를 보냈다.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던 가슴 아픈 시절이지만, 당시에 배웠던 일본어를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능통하게 구사하며, 가끔 이발소를 찾는 손님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켜 주기도 하신다고 웃으며 말씀하신다.
해방 1년 전인 1944년. 그가 16살의 어린나이에 처음으로 이발을 배우기 시작하고, 26살 이용사 면허증을 취득했으니, 손 옹의 경력을 수치로 따지자면 70년. 실로 헤아리기 쉽지 않은 세월이다.

손 옹의 오른쪽 발등엔 파편 자국이 남아있다. 수도사단 기갑연대 소속으로 강원도 금화 전방 부대에서 군복무를 하던 시절, 어느 날 이북에서 날아온 포탄 파편에 부상을 입었다. 파편을 제거할 시 다리를 절게 될지도 모른다는 병원 의사 말에 지금까지 파편을 신체 한 부분에 간직한 채로 살아가고 있다. 분단의 아픔과 6.25사변을 경험한 손 옹은 대한민국의 뼈아픈 근현대사 역사의 증인이기도 하다.

군 제대 후, 이발소 직원 근무를 하며 여수를 거쳐, 손 옹은 38살 때 나주로 이사를 오게 되고, 당시 이창동 일심이발관에서 2년 동안 근무를 한 후, 40세 지금의 평화이발관을 개업하게 된다.
지금이야 남녀 구별 없이 미용실을 이용하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1960~70년대 이발관은 남자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하얀 가운에 비누, 면도날이 떠오르는 이발소 로망. 남자는 이발소를 이용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전반적으로 깔려있어 소위 먹고 살기 힘든 시절 잘나가는 직업이었단다.

하지만 80~90년대 접어들면서, 전동식 가위(바리깡)이 상용화됨에 따라 남자들도 간편한 미용실을 찾기 시작했고, 동네 이발소들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에 도달했다. 이어 생계 문제로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하더니 현재 나주 전 지역엔 50여개가 채 안되는 이발소가 근근히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손 옹은 나주시 이용업주 중 단연 최고령자이다. 이발관을 찾는 손님들도 손 옹의 나이를 묻고선 깜짝 놀라는 일이 많다고 한다. 실제 손 옹은 사전에 써진 작은 글씨까지도 정확하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이 좋고, 86세의 나이를 무색케 할 정도로 건강관리를 잘해오고 있다.

“이발사라는 직업이 평생 쉬지 않고 일 해봐야 집 한 채 마련할 수 있을까 말까 해. 돈을 많이 벌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못했을 거야. 50년 넘게 일해오면서 손님들 상대로 돈벌려고, 장사한다는 생각으로 대한 적은 없어. 내 양심대로 ‘손님은 왕이다’ 생각하며 일하지.”
평화 이발관에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손 옹의 또래 단골손님들이 많았다. 이발을 하면 자연스럽게 말벗이 되고, 친구가 되고, 한 가족처럼 어울려 지냈던 그런 단골손님들이었다.

하지만 흐르는 세월을 거스를 순 없었고, 가족처럼 지냈던 사람들이 하나둘 세상을 등지며 그렇게 손 옹의 곁을 떠나갔다.
“나이도 들어가고, 이제 그만 가위를 내려놔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지. 그래도 가끔씩 찾아주는 손님들이 고맙기도 하고 지난 추억들을 잊지 못해서 못 그만두겠더라고..”

그런 손 옹을 옆에서 묵묵히 바라보며 오랜 세월동안 늘 같은 자리에서 남편 곁을 지킨 부인 유복지(76)씨. 손 옹은 부인의 내조가 없었더라면 지금까지 긴 시간동안 이 일을 할 수 없었을 거라고 얘기한다.
금실 좋은 이발소 부부는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그 중 아들과 며느리는 아버지의 손재주를 그대로 물려받아서 인지 서울 홍제동에서 인기 있는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 마침 광복절 연휴로 손자3명과 시골로 내려와 오순도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때마침 장난끼 가득한 막내 손자의 이발을 직접 해주는 손 옹의 얼굴에는 기쁨 꽃이 활짝 피었다. 그 웃음에 행복이 저절로 묻어난다.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 사라져 가는 것들이 있다. 낡고 오래된 것 보다는 새롭고 세련된 것들이 주목받는 세상. 낡고 오래된 것들은 피할 수 없는 세월 속에 점차 추억으로 우리에게 잊혀 져만 간다.

하지만 오래되었다고 해서 그 속의 가치까지 사라지고 잊혀 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는 빛이 나고 귀하게 여김 받는 법.
‘건강이 허락하는 그 날까지 이발소 문을 닫지 않겠다’ 는 손 옹의 마지막 말 한마디.
그 한마디에 담긴 반백년 세월 속의 가치가 낡고 오래된 것이 아니라, 환하게 빛나 보이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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