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고 싶은 나주를 만드는 것이 나의 꿈!’

만담가 김지훈 문화해설사, 그에게 듣는 유쾌한 인생사

  • 입력 2014.08.25 11:28
  • 기자명 이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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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시청 인터넷 홈페이지 상단 두 번째 시민마당 하단메뉴에 ‘칭찬 합시다’ 코너가 있다. 주위를 둘러보며 칭찬하고 싶은 분들을 인터넷 글을 통해 소개해주는 좋은 취지의 게시판이다.
지난 8월 15일 자로 ‘김지훈 문화관광 해설사님 감사합니다.라는 제목에 한 편의 칭찬 글이 올라왔다.

칭찬 글을 읽던 중 유난히 눈에 띄는 문장이 있었으니, ‘나주시 공직자가 김지훈님 같은 공직자가 모두 선택되고 지도자가 되어 좋은 일 할 수 있도록 배려가 필요하며 안녕하지 못한 어지러운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하겠다.

지역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역사, 문화, 먹을거리 등을 해설하는 직종인 문화해설사에게 안녕하지 못한 어지러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되어 일할 수 있도록 배려가 필요하다는 실로 엄청난 칭찬은 이 문화해설사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다시에서 태어나고 자라 이젠 나주를 알리는 홍보대사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김지훈(52)씨를 만나기 위해 반남면 국립나주박물관으로 향했다.

입구까지 마중 나와 반겨주는 편안한 복장차림의 그를 보고 있자니 벌써부터 친근감이 느껴진다. 쑥스러운 듯 하면서 다소 익살스런 미소를 짓는 그와 1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문화해설사로 살아가는 그만의 인생사를 엿들을 수 있었다.

그가 문화해설사를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은 관변 단체인 바르게 살기운동 나주시협의회 이사를 역임하던 2000년도 어느 날, 당시 함께 근무하던 손승락 사무국장(제향군인회 회장)과 함께 ‘우리고장 나주를 위해 무엇을 해볼까?’ 골똘히 연구하던 중 당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나주시 문화 관광 분야를 발전시켜보자’ 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결론은 났지만 무작정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왔습니다. 그냥 막연했던거죠. 그런데 바로 그 날 한참 골머리를 앓다가 시민회관 입구를 나서는데 평소엔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조그마한 대자보 하나가 눈에 딱 띄는 겁니다.”
우연찮게도 그 대자보에는 ‘문화해설사 양성교육모집’에 대한 홍보문이 실려 있었고, 그는 바로 2층 교육장을 찾아갔다.

“그때는 이미 교육인원이 초과된 상태였어요. 등록이 안 된다고 하더라구요. 모집기간도 지났고, 하지만 돈이 얼마가 들어가도 좋으니 교육에 참여하게 해달라고 계속 졸랐더니 결국 수업을 듣게 해주더군요(웃음).” 우연일까? 운명일까? 그와 문화해설사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김지훈씨는 평소 강좌, 교육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그 지역에서 열리는 시민예술교육 등 과 같은 사회단체강좌를 자주 찾아가 수강하곤 했다. 그때마다 그의 마음속에는 ‘이런 좋은 강좌들이 광주에서만 열려 나만 배울 것이 아니라 우리 고장에도 열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배우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그런 그의 바람들은 하나씩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가진 특유의 친화력과 추진력은 대도시에서 활동하는 여러 분야의 전문 강사들을 나주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제 자랑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믿거나 말거나 당시 공무원들은 제 속도를 따라올 수 없었지요. 그들이 차마 생각하지 못했었던 다양한 사회단체 교육 활동들을 제가 도맡아서 했었으니까요.”

이렇듯 그는 소위 거칠 것 없이 시민 단체에 곳곳에서 꽤 유명한 인사로, 이후 역량 있는 문화해설사로 발돋움 하던 2007년 어느 날, 별안간 시련이 다가왔다. 드라마 주몽의 인기에 힘입어 나주영상테마파크의 관광객이 부지기수로 늘어났던 바로 그 해였다.

“너무 좋은 거예요. 나주에 이렇게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날이 왔다는 사실에 매일 신이 나서 쉴 틈도 없이 일을 했던 것 같네요. 바쁠 때는 물조차 제대로 마실 시간도 없었지요.”
평소처럼 관광객들을 데리고 테마파크 언덕을 오르던 어느 날, 그는 별안간 몸에 이상이 생겼음을 감지했다.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피곤이 거센 파도처럼 밀려옴을 느꼈다.

집에서 이틀을 앓아누웠다. 좀처럼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을 찾았고 간염 진단을 받았다. 약물치료와 휴식을 병행하면 금방 회복하겠거니 했다. 그러나 대수롭지 않아보였던 간염이 심각한 간암으로 변모되는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고, 그는 서울 국립 암센터에서 간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기에 이르렀다.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8개월 만에 재발한 암은 갈비뼈, 이마뼈에 전이되어 그의 건강을 더욱 더 악화시켰다. 극심한 통증을 견디기 위해 간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는 마약성진통제도 위험을 무릅쓰고 복용했고, 매달 서울로 올라가 방사선 치료도 받았다.

통증도 통증이거니와 그에 따르는 경제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1년에만 4000만원이 넘는 약값과 치료비는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급기야 긴급 생활 자금을 시로부터 지원받게 되었고, 모 방송국에서는 모금운동 방송제의까지 들어왔다.

“PD가 와서 프로그램 설명을 하는데 큰 아들 인터뷰를 원하더라구요. 다 큰 자식이 아버지를 대신해 이런저런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내키지 않았어요. 좋은 일도 아닌데요. 큰 아들이 행여나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평소 헌신적으로 봉사하며 나주를 알리고자 노력했던 그에게 어렵고 힘들 때마다 지인들과 그가 소속한 여러 단체에서 도움의 손길들을 보냈고, 그 덕분에 차근차근 극복해나갔다.

김지훈씨는 지금도 암투병중이다. 날이 갈수록 체력에 한계를 느낀다. 하루일과를 마칠 때면 몸이 으스러지듯 아프다. 하지만 하던 일을 멈출 순 없다고 말한다.
“일할 때만큼은 아픔도 다 잊고, 표시도 안내야죠. 이제는 관광객들 눈빛만 봐도 만족도를 알아요. ‘참 이곳에 와보길 잘했구나. 진짜 잘 왔구나. 또 오고 싶다.’ 생각이 들게끔 하는 게 제 임무니까요. 한 분의 관광객일지라도 저를 통해서 양 손에 한 분씩 손을 잡고 나주를 다시 찾는다고 생각해보세요. 꼭 한번쯤 다시 와보고 싶은 곳. 정말 매력적이지 않나요.”

“내가 좀 더 안다고 해서 무작정 제 기준으로 설명해주기 보다는 그 분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겸손하게 대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 분들이 존중받는다는 기분이 들도록 말이죠.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고장을 물려주는 것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으로써 책무라고 생각해요.”

김지훈씨는 끝으로 가족 사랑에 대한 말도 잊지 않았다. “어머니가 올해로 85세이세요. 책도 많이 읽으시고, 매주 도전 골든벨과 역사스페셜을 한 번도 빼먹지 않고 TV 시청하실 만큼 건강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집안 일도 많이 도와주시고, 아내와 함께 제 뒷바라지 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신 분이에요. 오래오래 건강하게 가족들과 화목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시간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며, 그를 만나기전 칭찬 게시판을 통해 증폭됐던 궁금증이 비로소 풀렸다.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키고, 관광객이 아닌 기자를 배려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해주던 김지훈 씨를 보고 있자니, 그는 문화해설사이기전에 이야기를 썩 잘하는 만담가의 모습 같았다.

투병 중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태어난 고장을 위해, 후손들에게 물려 줄 우리 고장을 만들어 가기 위해 부단히 헌신하는 그가 앞으로도 여러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길 바란다.
또한 앞으로 천년 고도 역사의 목사골 나주시를 찾아주실 관광객들에게 만담가 김지훈씨를 문화 해설사로 동행할 것을 적극 추천 드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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