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의전을 보고 싶다

  • 입력 2014.10.06 10:07
  • 기자명 박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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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시립합창단의 아리아가 대호 수변공원에 한 폭의 선율을 선사한다.
생활에 지친 시민들, 그리고 혁신도시 공공기관 임직원 가족들에게 모처럼 편안하고 안정적인 감동을 전달하는 밤이었다.

지난달 30일, 올해로 두 번째 나주시가 의욕적으로 선보인 가을음악회다.
이날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해도 행사장을 찾은 시민들, 그리고 머나먼 나주에 터를 잡고 살아야 할 혁신도시 공공기관 임직원들의 가족들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주인공은, 이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한 합창단과 연주자들이었다.
이들이 주인공이요, 이들을 위한 축제의 장이었다.
하지만, 의전이라는 왜곡된 행정이 첫인상을 망쳐버렸다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행사 시작시간이 넘었는데도, 사회자는 좀처럼 행사시작을 하지 않는다.

무대위에 첫 연주자로 나선 팀들은 어색하게 몇십분을 부동자세로 일명 대기타고 있다.
관중들도 연신 손목시계를 보며, 왜 시작하지 않는지 웅성거린다.
사회자는 시쳇말로 하나마나한 소리를 계속 이어가며 시간을 질질 끈다.

십여분 동안 관객들도 “이제 곧 시작하겠지”라며 의아심속에 웅성거리고, 관중석 뒤편에서 부산스러움이 느껴질 때 비로서 “아! 이래서 지금까지 시작을 하지 못했구나!” 하고 혀를 찬다.
강인규 시장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뒤늦게 행사장을 찾아 인사할 시간을 벌기 위해 주최측이 시작시간을 계속 늦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자리에 착석하자 마침내 사회자가 행사 시작을 선언한다.
그리고 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소개한다.
일명, 의전이다.

주최측에서 볼 때 이날의 주인공은 바로 정치인이었던 셈이다.
주인공이 없으니, 시작시간이 넘어도 시작을 못한 셈이다.
“누구를 위한 행사인지, 무엇을 위한 행사인지”
행사의 취지는 의전이라는 형식에 의해 시작부터 무시된 셈이다.
행사장 뒤편 현수막에는 버젓이 ‘혁신도시 공공기관 임직원 가족들과 나주시민들을 위한 가을음악회’라고 적혀있다.

의전(儀典). 사전적 의미는 정해진 격식에 따라 치르는 행사라고 되어있다.
이날 행사는 공공기관 임직원 가족들과 시민들을 위한 문화행사였다.
시작시간을 몇십분씩 지체해가며, 정치인들을 일일이 호명해가며, 인사시키는 자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주시에서 행하고 있는 의전에는 시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 하다.
행사장을 찾아 몇십분씩 기다리고 있는 관객들, 몇십분 동안 부동자세로 앉아 무대위에서 어정쩡하게 악기를 들고 있는 연주자들.

시작 시간이 넘었는데도 행사시작을 알리지 못해 쩔쩔매는 사회자.
잘못 인식된 의전으로 인해 빚어진 촌극이다.
관람석 한 귀퉁이에 앉아 조용히 공연을 관람하고, 옆 사람과 격의 없이 대화하며, 행사가 끝난뒤에야 비로서, 나가는 관람객들과 출구에서 인사하는 정치인을 우리는 볼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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