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것을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나주가 낳은 명창(소리꾼) 전지혜

  • 입력 2014.10.20 10:16
  • 수정 2014.10.20 10:19
  • 기자명 이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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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에 명창이 떴다. 바로 구례 송만갑 판소리 고수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며 지역 최초로 대통령상을

 
 
수상한 나주인 전지혜(31)씨다. 현재 전남 도립 국악단 창악부 단원으로 활동 중인 그녀를 만나 젊은 나이에 소리꾼으로 살아가는 그녀만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어릴 적부터 남들 앞에 서서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던 그녀는 같은 동네에 이웃사촌으로 살면서 평소 자신을 친딸처럼 예뻐하고, 그녀의 예능적 기질을 눈여겨보던 이한규(현 나주국악협회 지부장)씨의 권유로 국악에 입문했다.

“처음에는 북을 배웠어요. 평소 친하게 지내던 그분(이한규 씨)의 북소리를 거의 맨날 듣다보니, 생소하다거나 거부감이 없었지요. 배우다 보니 소리도 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기더군요. 워낙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으니까요”

같은 분야에서 활동하는 또래들과는 달리, 그녀는 16세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소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게 됐다.
“(당시)아버지의 반대가 심하셨어요. 남들처럼 학업에 충실하길 바라셨거든요. 흔히 ‘딴따라’로 표현되는 이 분야에는 미래가 불분명 하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그렇지만 제가 이겼죠(웃음)”

남원국악고에 진학

자식 이기는 부모 없듯, 아버지 또한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기어코 허락을 받아낸 그녀는 남원 국악고등학교(현 남원국악예술고)에 진학했고, 국악에 입문하게 해줬던 이한규 씨의 소개로 현재 자신을 있게 해준 은사, 국내 최고 소리꾼 중 하나로 꼽히는 이난초 명창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진학한 고등학교에서 그녀의 첫 행보는 순탄치 않았다.
“사실 제가 남원 국악고 1기 졸업생이에요. 교내 국악과가 생기고 나서 첫 신입생이었던 거죠. 그러다보니 명창을 꿈꾸는 실력을 갖춘 학생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였어요. 그중에 판소리하는 학생들이 제일 많았던 것 같아요. 대부분 저보다 훨씬 먼저 어릴 적부터 배웠던 친구들이었어요.

저는 기껏해야 이쪽 경력이 2년도 채 안됐었지만, 자그마치 10년이 넘는 경력을 쌓은 동기들도 있었거든요. 그 틈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어요. 나주라는 둥지를 떠난 제게는 크나큰 고비였고, 그때 ‘아!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비로소 깨달았죠”

너나할 것 없는 실력자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쉴 새 없이 소리에 매진하던 그녀에게 또 한 번의 슬럼프가 찾아왔다. 잘하고자 하는 의욕이 앞섰던 탓일까? 매일 무리한 발성에 목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때마침 때늦은 변성기까지 겹친 탓에 판소리는 고사하고 일상적인 대화조차도 불가능 할 정도로 목 상태는 심각해졌다.

 
 
청천벽력같았던 성대결절

하지만 멈추지 않았고, 그 상태 그대로 연습은 계속 됐다.
뒤늦게 찾아간 병원에서는 현재 이미 성대결절을 넘어선 상태라며 지금 당장 소리를 중단해야 앞으로 살아가며 목소리를 내는 데 문제가 없을 거라 진단을 내렸다. 가뜩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형편에 힘든 상황에서도 뒷바라지를 해오던 부모님과 그녀에게 내려진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그때는 정말 경제적으로도 힘든 시기였어요. 그냥 주저앉고 싶었어요. 다른 과목에 비해 예체능 쪽 교육비용이 많이 들잖아요. 그럼에도 부모님은 제 뒷바라지 하시느라 힘든 내색 한번 없으셨는데 너무 죄송했어요. 어린나이에 밀려드는 부담감도 견디기 어려운 시절이였죠. 하지만 주저앉고 싶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늘 저에겐 든든한 부모님이 계셨어요.

저보다 더 속상하셨을텐데 제가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큰 믿음과 사랑을 보여주셨죠. 경연을 앞두고 예민해져 짜증을 부릴 때도 매번 군 말 없이 지지해주셨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그녀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전남대학교 국악과에 입학, 나날이 실력을 쌓아간다. 대학 졸업 시즌과 맞물려 진도의 남도국립 국악원에서 2년의 시간을 보낸 그녀는 더 큰 목표를 위해 한양대 대학원 행을 선택한다.

부모님의 사랑과 믿음을 기반으로 꿈을 위해 끊임없이 전진하던 그녀에게 대학원 졸업 후 노력에 걸맞는 기회가 찾아왔고, 2010년 전남 도립 국악단에 당당히 창악부 단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이후 2013년 소리꾼으로써 실력을 검증받는 자리라 할 수 있는 각종 소리 대회 명창부에 첫 출전을 하게 된다. 그녀는 광주 임방울 국악제, 보성 서편제 소리축제에 연이어 3위에 해당하는 우수상을 차지하며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올해 10월 11일부터 12일까지 구례에서 열린 제 18회 전국 송만갑 판소리 고수대회 명창부에 출전, 전국에 쟁쟁한 실력을 바탕으로 올라온 대회 예선 10명 중 그녀는 예선 1위를 차지, 4명이 각축을 벌일 본선무대에 가뿐히 진출했다.

홍보가, 대망의 1윌로 대통령상

 
 
이어진 본선무대에서 그녀는 ‘흥보가’로 심사위원 7명 모두에게 99점(점수 기준 최저95점~최고99)을 받으며 대망의 1위를 차지해 1500만원의 상금과 함께 우리지역 최초로 이 분야 대통령상을 받는 영예를 누렸다.

대회가 끝난 지 일주일이 채 안됐지만, 환희와 기쁨도 잠시, 그녀는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더 많다고 겸손히 얘기한다. “아직 한참 부족한 실력이에요. 부단히 노력해야죠. 언젠가는 국악단체의 장이 되어 국악 문화의 발전과, 지역의 판소리 후배들을 위해 앞길을 터주고 싶어요”
판소리를 통해 나주를 빛내 준 그녀에게 감사와 지지의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 그녀가 바라는 것은 부와 명예, 대중의 칭찬이 아닌 판소리에 대한 지역사회의 자그마한 관심과 사랑이다.
시대적 흐름 속에 우리 고유의 것들을 잊고, 비주류라 등한시하며 살아가는 때가 많은 요즘, 유네스코 세계 무형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자랑스러운 우리의 고유문화 판소리를 이번 기회를 통해 좀 더 가까워져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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