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신발의 ‘끝판 왕’ 나주에 떴다!

완벽 형태 금동신발 나주 정촌 고분에서 출토

  • 입력 2014.10.27 09:48
  • 수정 2014.10.27 09:50
  • 기자명 이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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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 즈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백제계 금동신발이 다시 복암리 고분군과 인접한 정촌 고분에서 거의 완벽한 형태로 발굴되어 1,500년 만에 그 화려한 자태를 세상에 드러냈다.

국립나주문화재 연구소(소장 이상준)는 마한 세력의 대외 관계와 세력 동향을 파악하기 위한 학술 정비차원에서 지난 해 확인했던 정촌 고분의 돌방무덤 3기 중, 최대길이 485cm, 너비 360cm, 높이 310cm로 현재까지 알려진 마한, 백제권 초기 대형 돌방무덤 중에 가장 큰 1호 돌방무덤 내부를 지난 23일, 조사한 결과, 여태 발견된 국내 금동신발 중 가장 완벽한 형태로 보존된 금동신발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굴된 금동신발은 길이 32cm, 높이 9cm, 너비 9.5cm로, 발등 부분에는 용모양의 장식이 있고, 발목 부분에는 금동판으로 된 덮개가 부착되어 있다. 특히, 신발 바닥에는 연꽃과 도깨비 문양을 투조(금속의 재료를 도려내어 모양을 나타내는 기법)와 선각(선처럼 파서 새긴 그림이나 무늬)으로 꾸며 화려하게 장식되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실제로 신었다기 보다는 고인의 기리기 위한 장례용품으로 추정된다”고 견해를 밝혔다.

그동안 금동신발은 무령왕릉을 비롯하여 고창 봉덕리, 공주 수촌리 고분 등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었지만, 부분적으로 훼손되거나 일부 장식이 손상된 채 발견됐었다. 그에 비해 이번 정촌 고분에서 발견된 금동신발은 발등 부분의 용 모양의 장식이 한쪽 면에서 부분적으로 훼손된 것을 제외하면 거의 완벽한 상태라 볼 수 있으며 또한 우수한 디자인 특히, 발목 부분에 덮개가 부착된 독특한 형태의 제작 기법으로 학계에 지대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신발 앞에 용머리 장식이 있고, 신발 바닥에 정교한 문양이 새겨진 금동신발은 국내 처음 발굴된 것”을 강조하며, “백제가 영산강 유역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시점과, 토착 세력간의 관계 등 당시의 복잡한 정치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유물이라 볼 수 있다. 이는 국보급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발굴에 금동신발 외 금제 귀걸이, 장신구, 화살촉, 토기, 석침, 개배(뚜껑 접시)등 생활 유물들을 비롯해 서너명으로 보이는 인골이 함께 발견돼 관심을 더하고 있는 가운데, 문화재연구소는 앞으로 돌방무덤의 구조와 축조 방법 등을 파악하기 위한 추가 발굴조사를 통해 유물 수습을 완료하고, 올해 11월말에 최종 발굴 성과를 발표함과 동시에 방문객들을 상대로 공개 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라 밝혔다.

또한 나주 복암리 고분군과의 상호 연관성을 검토하여 국가 지정 문화재 확대 지정 등 최적의 보존 방안을 마련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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