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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포면에서 그녀를 모르면 간첩봉사는 어려운 이웃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꼭 필요한 활동
이신재  |  jae70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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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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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포면의 여장부 남명자 자원봉사회 지역팀장

“가끔은 제가 누리고, 받기만 해도 될 나이가 됐으니 이제는 그만 (봉사)활동하셔도 될 텐데.. 라는 말을 들어요. 서운하지요. 그냥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가면서 하는 말인지, (나이든)저를 위해서 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썩 달가운 말은 아니네요. 저에게 있어 봉사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뿐만 아니라 제 자신을 위해서 꼭 해야 하는 활동이거든요”
                                                                                                                                                                                        

   
 


산포 등수리 마을에 살며, 올해로 66세를 맞는 그녀가 힘주어 얘기 한다. 여성 자원봉사회 산포지역 팀장, 제향 군인회 여성 부회장, 바르게 살기 운동 산포면 여성회장, 교통질서 확립을 위한 교통 지킴이 회원 등 끝으로 본지의 시민기자에 나주신문사 더불어봉사단까지, 이처럼 그녀의 활동 반경은 우리 지역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어, 그녀의 직업을 국한시켜 단정 짓기에는 다소 애매한 경향이 있다. 지역사회 각종 단체나 모임에서 활동하는 사람치고, 그녀를 모른다면 간첩이라 얘기할 정도니, 이쯤 되면 가히 여장부라 칭해도 무리가 없겠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 지역 사회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발로 뛰는 그녀는 산포면의 여장부 남명자 씨다.

8남매 중 장손이자, 9살 많은 남편 강재정 씨에게 21살의 젊은 나이에 시집을 와, 산포에 거주한지도 언 45년이 지났다. 실로 헤아리기 쉽지 않은 세월 이다.

지금으로부터 38년 전, 급작스런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몇 차례 수술대에 오르며 1년이 넘게 병원 신세를 지게 된 남편 대신 가정 생계를 책임지게 된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애당초 광주지역에서 거주하며 나름 고생 않고 자라 왔던 탓에 농사관련 일은 듣지도, 해본적도 없던 그녀에게 남편의 사고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고.

하지만 그녀는 좌절하며 주저앉아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 시절, 시골에 농사짓는 일 말고는 다른 돈벌이를 생각할 겨를이나 있었을까, 당장 생계를 위해 팔을 걷어 붙였다. 그녀는 품삯을 받고 남의 일을 도와주는 품팔이도 서슴치 않으며, 닥치는 대로 농사 판에 뛰어들어 땀을 흘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살아왔는지 까마득해요. 집안의 맏며느리로써, 시부모님 모시고 군말 없이 땀 흘려가며 ‘이것이 시집살이인가 보다’ 하고 살았지요. 언제 농사일을 해본 적이 있어야지, 그 시절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았겠지만 참 그때는 힘들더라구요”

고된 노동에 그녀의 몸은 성할 리 없었다. 45세가 되던 그해, 광주 기독병원에서 허리 쪽 큰 수술을 받았다. 그 이후에도 10차례나 넘는 크고 작은 수술을 받으며, 그녀의 건강은 갈수록 나빠졌다. 문득 걱정이 되어 지금은 상태가 어쩌신지 물었다.

“그냥 이래저래 불평, 불만 군말 없이 하루하루 살다보니, 속병이 들었었나봐요(웃음). 그런데 저한테는 그렇게 힘들었던 생활들이 지금의 행복으로 이어질지 누가 알았겠어요”

알 수 없는 그녀의 대답에 고개를 갸우뚱 하니, 그녀가 말을 이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하루는 방안에 앉아 생각해보니, 이렇게 살다가는 내게 남은 여생이 별 의미없이 끝나겠구나. 참 서러운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문득 ‘나도 이렇게 아픈데, 나보다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겨울까?’ 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전에 나주신문에 더불어 봉사단 박경희 단장의 기사를 읽으면서도 공감했던 부분인데, ‘본인에게 주어진 남은 여생을 덤으로 사는 삶이라 생각하며 남들을 돕고, 베풀며 살아야 겠다’는 그 말이 당시 제게 들었던 생각과 일치하더군요”
 

   
 

이후 그녀는 각종 봉사 단체 소속으로 왕성한 자원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녀의 선행이 널리 알려지며 국무총리, 도지사 표창 등 자원봉사와 관련한 각종 상도 수상하기도 했다. 여기서 한가지, 본인도 신기했던 것은 집에 있으면 통증으로 시달렸던 몸이 지역에 나와 봉사활동을 하다보면 깨끗이 완쾌된 듯 가벼워진다는 것이다.

곁에서 묵묵히 대화를 듣고 있던 남편 재정씨가 한마디 거든다.
“자네는 몸이 많이 아픈 사람인께, 남에게 봉사하며 살어” 아픈 사람인데 남에게 봉사하며 살라니, 어딘가 앞뒤가 안 맞는 말씀에 무슨 의미인지 여쭸다.

“(부인이) 집에만 있으면 자꾸 몸이 아프다고 해. 근데 밖에 나가서 활동하다보면 아픔도 잊고, 건강해지는 거 같더라고(웃음). 그래서 이왕이면 봉사하며 좋은 일도 하고 건강도 챙기라는 것이지 허허허”
금실 좋은 노 부부는 서로 마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녀는 그런 남편이 고마운 듯 말을 덧붙였다.

“우리 아저씨한테 정말 고마운 것이, 제 뒷바라지를 다 해줘요. 바쁜 농사철에 일손도 거들어야 하는데, 이곳, 저곳 봉사할 곳이 많아서 제가 내조를 잘 못하는 편이거든요. 되려 남편의 외조와 넓은 이해심 덕분에 지금 제가 있는 거지요”

“늙은 나이에 그래도 지금까지는 저를 필요로 하고, 오라는 곳이 있어 너무 행복해요. 몸이 아팠던 지난 과거를 보상받는 기분이랄까. 정말로 못 걸어 다니지 않는 이상은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든 달려갈 거예요”

   
 

웃음이 넘치는 행복한 그 집의 달력은 벌써 11월로 넘어가 있다. 그 달력의 날짜 곳곳엔 동그라미로 표시가 되있고, 그 옆엔 서툰 글씨체로 그녀의 봉사 일정이 메모되어 있다. 혹시나 날짜를 헷갈려, 봉사에 참여하지 못할까 하는 걱정에 그녀가 미리 기입해 놓은 것이다.

그 달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나주는 참 따듯한 고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주 신문 지면을 통해 지역 곳곳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따듯한 손길을 전하는 아름다운 그들을 소개하면서, 이 시대를 함께 동행 하고 있다는 사실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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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더불어 밝은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집문 밖을 나서는 그분들께 진심어린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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