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포리의 눈물 - 마을을 지키기 위한 끝없는 사투

터전을 지키고픈 절규의 현장을 가다

  • 입력 2014.12.08 10:11
  • 수정 2014.12.08 10:26
  • 기자명 이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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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름 보따리를 싸들고 집 대문을 나선지 3주째, 그때만 해도 이리 춥지는 않았는데, 어느 덧 코 끝 시린 계절이 찾아왔다.

배추에 간도 해야 하고, 가을 새 거둔 콩도 마저 뚜들겨야 하는데, 지금 그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니란다.
누구에게는 태어나 자란 곳, 남편 따라 시집 왔던 이 곳 마을. 긴 세월동안 땀 흘려 일궈 왔던 소중한 터전인 이 곳.


왕곡면 신포 1구 내동마을은 요즘 한시도 바람 잘 날이 없다.
이 곳 내동 마을에 들어서기로 한 광역 친환경 농업단지. 그녀들과 마을 주민에게는 일명 ‘똥 공장’이라 표현되는 이 조성 사업은 벌써 수년째 답보 상태에 놓여있다.

‘기필코 짓고야 말겠다’는 사업자들과 ‘죽어도 똥 공장만큼은 안된다’는 그녀들 사이의 추운 겨울 밤 치열한 사투는 언제쯤 끝이 날 것이며, 어떠한 결말에 도달할 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그러한 가운데, 내동 마을 그녀들은 시청입구 길목 한 켠, 천막 아니 배수의 진을 쳤다.

공사가 취소되지 않는 이상 마을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40대부터 80대까지 연령대를 불문한 22명의 그녀들. 눈발이 휘날리고 찬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겨울 밤, 얇디 얇은 휘장을 바람막이 삼고, 냉한 바닥에 이불 몇 장 겹쳐 논 것이 전부지만, 그녀들의 굳은 의지는 사그라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저 평화롭던 내동 마을 주민들 사이에 점차 균열이 일어났다. 작은 것도 함께 나누며, 오순도순 이웃사촌처럼 늘 화목하게 지내던 마을 주민들은 몇 년 전, 조성사업이 확정되자 찬, 반 세력으로 각기 나뉘어 갈라섰다.

사업관계자들은 마을 주민 약 40여명이 찬성도장을 찍었다며, 주민 동의를 구했다 사업을 추진하려 했고, 동네는 순식간에 살얼음판이 되었다.

천막 속 그녀들은 찬성한 그들이 누군지 궁금했음이 분명할 터, 시 담당자에게 명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명단은 공개되지 않았고, 명단이 공개될 시 ‘동네가 개판날 것’이라는 추측성 답변이 전부였다고 한다.

뚜렷한 증거는 없지만 서도, 누군가는 현금 백 만원을 받고 도장을 찍었고, 주소만 등록해놓고 실제로 살지도 않는 또 누군가가 도장을 찍었다는 말들이 은연중에 흘러나왔다.
밤새 웃고 떠들며 시끌벅적 했던 마을 회관에는 이후, 침묵만이 자리를 지켰으며, 우연히 길을 가다 마주친 그 누군가는 못 본 척 지나치기 일쑤였다고.

한 아주머니가 “한 번은 속아도, 두 번은 안속아”라며 입을 열었다. 사실 마을 인근에는 이러한 사업 시설이 한 두 곳이 아니다 말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던 각종 시설들이 마을 곳곳에 들어서부터 이야기다.

“마을 봉연사(사찰) 등산로가 얼마나 좋은디, 전망도 좋고 공기도 좋고, 그런데 뭔 분뇨사업이네 어쩌네 하는 시설들이 들어온 후부터 등산객이 뚝 끊겼어. 그뿐만 아니야. 겨울이야 창문을 닫고 살지만, 여름에는 창문을 다 열어놓고 살잖어. 노인들이 뭔 돈이 있어서 에어컨을 사겠어. 근데 밤이 되면 무슨 지독한 냄새가 그렇게 진동을 하는지 살 수가 없다니까. 이번 사업도 말이 좋아 친환경이지. 분뇨. 말 그대로 똥 공장 아니야. 두 번은 안속아”

이윽고 잠자코 대화만 듣고 있던 다른 아주머니도 조심스레 억울한 어조로 말했다. “5년전이었던가요. 현재는 이웃 마을에 들어와 있는 된장공장을 원래는 우리 마을에 유치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우리 마을엔 조성된 지석묘, 고인돌 공원 같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기 때문에 보존 차원에서 된장 공장은 지을 수 없다고 하는 거예요. 아니 그러면 된장 공장은 문화재 때문에 안되고, 똥 공장은 된다는 건가요. 이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어야 말이지”

대화가 이어질수록 답답함의 깊이를 더해지는 듯 해, 이만 마무리를 짓기 위해 자리에 일어서, 끝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냐 여쭈었다.

고민할 여지없이, 천막 속 그녀들은 “죽어도 반대, 여기서 얼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반대”라 입을 모았다.
시청 길목을 지나는 어느 누군가는 그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렇게 추운 날 길거리에서 사서 고생을 하나’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며, 어쩌면 지역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분쟁이라 손가락질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단언컨대, 이 시간, 이 분들을 만나며 어느 것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꼭 어떠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며, 무엇이 옳고 그른 가에 대한 문제도 아니다.

긴 세월을 살아오며, 걸음조차 힘겨운 80살 넘게 잡수신 어르신이 이 추운 겨울 날 이불을 뒤집어 쓴 채, 그저 반대, 반대를 외쳐 가며,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토록 지키고 싶은 소중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 단지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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