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의 시계는 멈춰있다

  • 입력 2014.12.15 11:11
  • 기자명 박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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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쯤이면 마을 회관에 도란도란 둘러앉아 누구네 자식은 어느 회사에 취직했다느니, 누구네 자식은 벌써 장가가서 자식을 뒀다느니, 또 누구네 자식은 바람피우다가 걸려서 이혼하게 생겼다느니 등 잡다한 뒷담화로 한 겨울을 날 아주머니들이다.

그 중에는 100원짜리 삼봉 치면서 서로 언성도 높이고, 내일부터는 회관에 나올 일 없다고 때도 쓰고, 올 겨울은 마을사람 그 누구도 초상(장례)치루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서로 다독이며, 추운 겨울을 서로 의지하며 지낼 아주머니들이다.

일 년 동안 농사지으면서 어느 한군데 몸 성한 곳이 없는 우리네 여성농민들이, 몸에 좋다면 만사 제쳐 놓고 이 병원 저 병원 찾아 헤멜 여성농민들이 올해는 살림살이까지 챙겨 길 한가운데 섰다.

엄동설한 추위를 딸랑 천막하나로 견디며, 여인네 손이라기에는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거칠고 삶의 무게에 굵어진 손마디로 자신들의 억울함을 삿대질한다.

바로 왕곡면 신포리 주민들이다.
이들이 추운 겨울 따뜻한 마을회관을 등지고 나주시청 앞 도로변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이는 이유는 마을에 들어설 축산분뇨자원화사업 때문이다.

축산분뇨자원화사업은 나주축협 등을 중심으로 농림축산식품부의 사업승인을 받은 ‘광역친환경 농업단지 조성사업’이라는 명칭으로 주요공정은 축산분뇨를 이용한 퇴비공장이며 사업비는 100억원대 규모다.
이미 국비 등이 책정되어 착공식까지 마쳤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나주시가 시비지원을 결정하지 못한 상태라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주최측도 소송까지 불사하며 나주시를 압박하고 있는 상태다.

사업을 진행하려는 측의 입장과 사업을 반대하는 측의 입장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가운데 현재 나주시의 입장이 주목된다.
단 눈여겨 볼 대목이 하나 있다면 나주시가 주민동의가 이뤄지지 않는 한 사업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힌 입장이다.

한편으로 보면 반대하는 측의 입장을 들어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의 숙명처럼 보이는 측면도 있다.

과연 무엇이 옳을까?
한해 농사에 찌든 몸을 회복하기 위한 농한기 따뜻한 아랫목을 포기하고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순박한 아주머니들의 힘겨운 버티기가 옳은 것일까?
여기에 님비현상이라는 사회적 용어를 적용하는 것이 맞을까?

님비. [NIMBY(<not in my backyard)]
쓰레기장이나 핵폐기장, 원자력 발전소 따위와 같이 공해나 위험의 가능성이 있는 사회적 시설물의 설치에 대해서, 그 필요성은 원칙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자기 주거 지역에서만은 안 된다고 하는 자기중심적인 태도나 경향을 말하는 용어다.

이 용어를 왕곡면 신포리 주민들에게 적용할 수 있을까?
이것은 필자가 결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다.
단, 50년 넘게 살고 있는 그들의 삶의 터전에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면, 무조건 그들의 입장이 우선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반대와 찬성이 몇 퍼센트라는 수치적 계산으로 재단할 문제는 아니다.
단 한사람이라도 반대하면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들에게는 지금까지 살고 지켜온 터전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사업의 타당성이니, 찬성인원이 몇 명이니, 법적 하자가 없다느니 등을 주장하기에 앞서, 왜 엄동설한에 천막을 칠 수밖에 없었는지 진솔한 이야기부터 들어봐야 한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시계가 4월 16일 그날에 멈춰있는 것처럼 신포리 주민들 천막안의 시계도 지금 멈춰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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