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로 맺은 특별한 부부의 이야기

‘변해야 통한다’ 그들만의 특별한 태권도 교육

  • 입력 2014.12.22 09:51
  • 수정 2014.12.24 09:18
  • 기자명 이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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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끝마친 초, 중학생들이 하나 둘 무리 지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파릇한 새싹 같은 아이들이 주섬주섬 가방을 열고 제법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복장을 갖춰 입는다.

당장이라도 화려한 발차기와 무술을 보여줄 것만 같던 아이들은 금세 열을 맞추고 정자세로 자리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았다. 어른들이나 한다는 명상의 시간이다.

잠시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기합이 바짝 든 목소리와 함께 사범님 구령에 맞춰 박력 있는 동작을 몇 차례 시연해 보인다.
그런 아이들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관장 정우용(38)씨다.

 
 
송월동 KT전화국 옆 골목에 위치한 ‘태권박사스쿨’. 이 특별한 태권도장을 그는 10여 년째 운영중이다.
특별한 태권도장? 이유는 우용씨와 그의 아내 안수예(35)씨가 함께 도장의 관장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관내에서 부부가 함께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것은 이색적인 사례다. 더욱이 두 부부는 같은 용인대학교 태권도학과를 졸업한 선후배사이다.

저력의 여검사이기도 한 그의 아내는 나주고 출신의 펜싱 주니어 국가대표에 선발된 경력이 있는 잘나가는 인재였다.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 다니며 사랑을 쌓아가던 둘은 2005년 1월 웨딩마치를 올렸고 지금은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태권도가 맺어준 운명 같은 부부는 “함께 도복을 입는 자체가 행복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금술이 좋다.

3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난 우용씨. 어릴 적 또래에 비해 외소한 체격이었던 그는 스무살 넘게 차이 나는 큰 형님의 권유로 태권도를 시작해 초, 중, 고, 대학부까지 선수생활을 거치며 군인시절 3군 대표선수, 그리고 뉴질랜드 태권도 코치로도 활동했다.

그의 지도자적 역량은 각종 수상 기록에서 엿볼 수 있다. 전국 태권도 연합회 최우수 지도상을
 
 
비롯한 우수체육관상, 모범지도자상 등 나열하기도 힘든 화려한 수상경력의 소유자다.
현재는 태권도 분야 석, 박사 엘리트 과정을 밟으며, 태권박사스쿨 관장으로서 태권도 꿈나무들을 지도하고 있다.

그는 사실 지금처럼 지방이 아닌 수도권 대도시 지역에서 화려한 경력에 걸맞는 큰 규모의 도장을 운영하고 싶은 그만의 꿈이 있었지만, 나주가 고향인 아내의 권유로 2004년, 이 곳 나주에 정착해 지금의 태권박사스쿨을 개관한다.

하지만 나주에서의 첫 걸음은 험난하기만 했다. 대한민국 국기인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래, 태권도 국가대표들의 맹활약 속에 수많은 메달들이 쏟아졌고, 효자종목 노릇을 톡톡히 해내던 그 시점부터 전국 곳곳에 체육관들이 우후죽순 생겨나 이른바 태권도 붐이 일기 시작했다.

나주도 예외는 아니었을 터, 기존에 정착해 있던 체육관들의 말 못할 텃새와, 주변에서 우려하는 시선들은 새내기 부부관장의 발목을 붙잡았다. “얼마 못가 문 닫을 것이 뻔하다, 나주에선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등의 비웃음과 조롱 섞인 핀잔들도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더군다나 아파트 단지마다 버젓이 자리 잡은 체육관이 있었기에 우용씨 부부의 도장은 아파트 단지도, 번화가도 아닌 당시 황무지와 다를 바 없는 후미진 곳에 위치해야 했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과 지역의 조건에 부부는 더욱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남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변화를 통한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 시작은 교육방침의 차별화였다. 태권도 겨루기, 대련중심의 보여주기식의 상업적 성격을 띄고 있던 기존 틀에서 벗어나 스토리텔링을 접목시킨 예절 인성교육, 웅변 교육, 명상의 시간과 더불어 본 운동에 앞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기초체력운동에 방점을 두었다.

 
 
또한 뉴질랜드 코치 시절 잠시 익혔던 영어 회화를 태권도와 접목시켜 교육 시간 중 기초적 대화를 영어로 대화하며 태권도를 배우는 어린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할 수 있도록하는 일석이조의 수업을 진행했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개관 1년 만에 80명이 넘는 수련생들이 도장을 찾아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현재는 140여명의 수련생들이 이 곳 태권박사스쿨을 다니고 있다.

또한 입시, 다이어트, 기초체력향상 등의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도장을 찾는 수련생들로 하여금 4명의 지도자와 분반 수업을 진행하여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인바디 측정기기를 도입, 매달 신장, 몸무게, 체지방 등을 측정하여 자녀들의 성장 수치를 학부모들에게 통지해주는 세심함도 잊지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태권도 외에도 한국줄넘기협회 나주 지부장을 역임중인 그는 학부모들을 위해 올해 12월부터 점핑 파워 줄넘기 Mom's 클럽을 도장 내에서 별도 운영하며, 어머니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물질적 욕심보다는 지역 내 아이들이 편안히 소통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는 정우용 관장. 그는 태권도에 열기가 예전에 비해 다소 주춤한 편이지만 아직도 국내에 운영 중인 체육관은 수요와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포화상태라 언급하며 앞으로 자신의 목표를 힘주어 얘기한다.

“진정으로 태권도를 사랑하는 뜻 있는 분들과 함께 미래 지향적 태권도 컨설팅 회사를 만드는 것이 제 꿈입니다. 태권도와 접목시킬 수 있는 다채로운 컨텐츠를 개발해, 체계적인 태권도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죠. 태권도가 그저 즐기는 스포츠가 아닌 필수로 접해야 하는 스포츠가 되길 바랍니다. 이제는 변해야 통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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