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나이 103세, 송월동 김오망례 할머니

  • 입력 2015.01.19 09:08
  • 수정 2015.01.19 09:13
  • 기자명 이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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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모처럼 마당에 비추는 포근한 햇빛이 반가웠는지 집 앞 마루에 걸터앉아 쉬고 계셨다.

송월동 김오망례 (103세)
송월동 김오망례 (103세)
어색한 분위기를 만회하기 위해 나름 애교 섞인 질문과 준비된 개그를 몇 차례 드려보았으나 할머니는 “모르겠어, 기억 안나” 아니면 묵묵부답이셨다.

방금까지만 해도 재가복지서비스를 위해 이 곳에 나와 계시던 복지사 선생님이 할머니와의 대화를 이끌어줄 소통의 창구역할을 해주실 것으로 기대했지만, 근무 시간이 다 되, 결국 둘만 남겨지고야 말았다.
침묵 속, 그렇게 30여분이 흘렀다. 그 때쯤 할머니도 한 발짝 너머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손자뻘 되는 기자의 민망한 시선을 느끼셨는지도 모르겠다. “춥다. 방으로 들어가자”는 할머니의 말씀이 왜 이리도 반가웠을까.

우리 지역 최고령자. 김오망례 할머니는 올해로 103세를 맞이하셨다. 숫자가 숫자인지라 한 살, 한 살 연세가 느실 때마다 일일이 기억할 수 없어, 할머니는 귀찮으신 듯 모르신다고 말씀하셨지만, 복지사 선생님의 귀띔으로 어렴풋 파악이 가능했다.

실제 나이와는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무려 01****로 시작되는 주민등록번호가 할머니가 살아오신 오랜 세월의 무게를 잠시나마 짐작케 해준다.

방에 들어와서 보니 숨이 조금 차시는 모습, 그렇지만 고령이심에도 거동과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신 김 할머니.
벽에 걸려 있던 할머니의 젊은 아낙 시절 사진이 눈에 띈다. 무척이나 굳세고 야무진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 속 얼굴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어보이신다.

“할머니가 기억하시는 젊은 시절은 무엇일까요.. 일제침략시대, 6.25전쟁 다 겪으신 세대시라 참 힘드셨겠어요”라는 질문에 이내 침묵하시나 싶더니, 몇 말씀 던지신다.

“시집와서 강 너머 살던 시절에 자식들 키우느라 열심히 농사지었는데, 일본사람들이 다 뺏어갔지”, “6.25 때는 무서워서 밤에 못 돌아 다녔고, 낮에도 숨어 지냈지. 어느 날은 사람들을 일렬로 무릎 꿇려 놓고 총으로 쏴 죽이는 것도 봤어..”

무심한 듯 태연히 말씀하시는 할머니가 자녀들 이야기로 대화를 이어갔다. 생계를 걱정해야 했던 모두가 배고팠던 그 시절, 자식들에게 먹는 것도, 배우는 것도 어느 것 하나 넘치도록 잘 해주지 못했던 후회가 너무 남는 다는 말씀이셨다. 그럼에도 속 썩이는 자식 하나 없다며 다들 하나같이 효자라고 자랑을 하신다.
“자주 못 보긴 하지만, 그게 자식 탓은 아니잖아. 다들 바쁜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탈 없이 건강히 지내주는 것만 해도 그게 효도야. 부모 마음은 다 똑같지 뭘”

똑똑똑 대문 두드리며 “어이 계시오?” 갑자기 요란스레 등장하는 이웃 집 할머니. 어깨가 너무 아프다며 김 할머니께 파스 좀 붙여 달라 부탁하러 오셨단다. 파스를 띄었다 붙였다 하시는 모습이 너무 정겨워 보인다.
 
 
10살이 넘게 차이 나는 사이지만 영감님을 여의고 20여년을 홀로 지내오신 두 분에게는 서로가 둘도 없는 벗이나 다름없다 하신다.

김 할머니의 영감님. 그러니까 남편 되시는 할아버지는 20여년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지금은 얼굴도 가물가물 기억도 잘 안나지만, 생전 술, 담배도 안하고, 그저 열심히 농사짓고 가족밖에 모르셨던 호인이셨다고.

각종 농기구를 모아둔 창고와 담벼락 위로 뻗은 감나무 두 그루, 그리고 파, 상추, 배추가 듬성듬성 심겨진 텃밭이 있는 마당 풍경은 생전 영감님이 할머니께 남겨준 선물이다.

가을 새 주렁주렁 감이 열릴 때면 참 맛있게도 드시던 영감님이 생각나신다는 할머니. 지금이야 몸이 불편해서 직접 따지는 못하시고, 세찬 바람이 불고 간 뒤 마당에 떨어진 감을 하나 둘 주워 모아놨다가 혼자도 드시고, 마을 회관서 같이도 드시고 하신단다.

 
 
이웃 집 할머니가 김 할머니 자랑을 유쾌한 목소리로 늘어놓는다.
“얼마나 건강하신지 몰라. 동네 회관까지 혼자 걸어갔다 오시기도 하고, 마음 씀씀이도 얼마나 좋으시다구. 그저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다가 편안히 잠들다 가시면 그 것이 복 아니것어”

평소 텔레비전을 자주 시청하신다는 할머니는 유난히 사건, 사고가 많았던 작년을 회고하시며 말씀하셨다. “올해는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어. 나주도 좋은 일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 지역에서 가장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이 해주시는 올해 덕담이다.

애초 장수의 비결 정도나 여쭤볼 요량으로 찾았던 할머니 댁이건만, 어찌된 일인지 여쭙기가 죄송스러웠던 것은 왜였을까.

자식 이야기 할 때를 제외하고는 할머니는 최대한 말씀을 아끼는 모습이셨다.
감나무 가지 사이로 어둠이 모습을 드러낼 즈음, 대문 밖을 나섰다. 할머니는 굳이 대문까지 힘든 걸음을 하시고 말없이 손을 흔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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