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학진흥원에서 역사문화도시의 길을 찾다

  • 입력 2015.06.08 12:01
  • 수정 2015.06.08 12:02
  • 기자명 나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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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 문화원 이사 이웅범
▲ 나주 문화원 이사 이웅범
문화원에서 나주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 그리고 인물 등을 배우고, 그것을 자산으로 나주시가 역사문화도시로 발전해가야 한다는 글을 지역신문에 쓴 것이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원도심 재생사업이 추진되는 것을 보면서 그 꿈이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첫째, 지난 해 나주향교에서 진행한 ‘굽은 소나무학교’에 사학자들을 초청해 나주의 역사인물들을 소개하는 강의를 몇 차례 열었다. 나름대로 오랜 연구를 통해 인정받는 분들이지만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둘째, 얼마 전 나주시가 문화특화도시사업 추진을 위해 마련한 오피니언 리더들의 간담회에서 나주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어떤 이는 ‘영산강 문화’라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의향’이라고 했는가 하면, 또 다른 이는 ‘목문화’라고 했다. 나름의 근거와 논리를 갖춘 주장들이었지만 다른 이들로부터 흔쾌히 동의 받지 못했고 충분한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셋째, 우리 나주에는 정가신, 신숙주, 박순, 임제, 김천일 등 수많은 역사인물들이 있는데 왜 인물열전 하나 제대로 발간하지 못할까 하는 생각을 평소에 해왔다.

이 세 가지를 관통하는 답은 우리 지역의 정신과 문화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자료수집 및 연구가 부족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일부 대학이 부분적으로 담당해왔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전문 인력과 예산이 필요한 일이다.

역사문화도시 발전 가로막는 지역학 연구의 부족
비단 우리 지역만의 문제일까? 그렇다. 경기도 성남시에는 일찍이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있어 수도권의 한국학 연구를 주도하고 있고, 경상북도 안동시에는 ‘한국국학진흥원’이 설립돼 영남을 중심으로한 연구를 19년째 하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정부가 설립한 재단법인으로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고 ‘한국국학진흥원’은 안동대학교와 경상북도 그리고 안동시가 설립한 재단법인으로 지자체가 운영하고 정부가 지원한다.

호남지역에서도 15년 전부터 지역원로들이 앞장서서 안동의 ‘한국국학진흥원’을 모델로 한 ‘한국학호남진흥원’을 설립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특히 민선 4기에 신정훈 전 시장이 ‘한국학호남진흥원’을 나주에 유치하려 했다.

하지만 민선 5기 이후 나주시가 전혀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서 최근에는 광주시가 유치를 추진해왔다.
다행히 지난해 7월 전남도와 광주시가 광주와 전남의 상생과제 중 하나로 ‘한국학호남진흥원’을 공동으로 설립하기로 했다. ‘한국학호남진흥원’을 나주에 유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다시 열렸고, 설립과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전라남도와 광주시가 분담함으로써 재정적 부담을 덜게 됐다. 다시 나주에 기회가 온 것이다.

광주와 전남, ‘한국학호남진흥원‘ 공동 설립 선언
지난 12일 나주문화원 회원들과 나주향교와 남평향교의 유림을 비롯한 ‘한국학호남진흥원 나주유치위원회 준비모임’이 안동에 있는 ‘한국국학진흥원’을 방문했다.

6시간 만에 도착한 보람은 ‘장판각’ 한 곳에서 찾고도 남았다. 장판각은 ‘한국국학진흥원’이 역점을 두고 수집하고 있는 목판을 전문적으로 보관하는 시설로, 연면적 1,402㎡에 지상 2층 건물 두 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습도에 따라 자동으로 개폐되는 전동식 창을 비롯하여 목판 보관에 필수적인 각종 보존 장비를 갖추고 있다.

장판각에 보관 중인 목판 65,115점(2015년 3월 말 현재)은 문화재청의 심사를 거쳐 유네스코 본부에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서가 제출된 상태다. 6월에 열리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에서 등재 여부가 결정된
다.

목판은 조선시대 유학자의 저술을 책으로 찍어내기 위해 나무에 새긴 기록물로, 우리나라 유교문화를 대표하는 기록유산의 하나이다. 특히 유학 집단의 사회적 공론을 거쳐 후손과 후학이 자발적으로 경비를 모아 책을 인쇄하기 위해 목판을 제작했다는 점에서 주요 등재기준인 진정성, 독창성이 뛰어나 등재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목판은 3백여 문중에서 기탁한 것으로, 15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까지 조선왕조와 일제 강점기 시기에 제작한 문집, 역사·전기서, 성리서, 지리지 등 약 7백여 종이다.

장판각을 나오며 우리도 도난과 훼손 등으로 인해 언제 사라질지 모를 상황에 처해있는 미천서원의 기언집 목판 861점을 하루 빨리 제대로 된 수장시설에 보관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기언집 목판은 미수 허목의 시문집으로 현재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17호로 지정되어있다.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앞둔 유교목판
‘한국국학진흥원’은 고문서와 책자를 보관하는 과학적인 수장고도 갖추고 있는데, 2015년 3월말 현재 고서 131,294종과 고문서 216,427 점 등을 보관 중이다. 이 중에는 국보 1점(제 132호 ‘징비록’), 보물 19종 1,093점, 시도유형문화재 26종 1,918점, 문화재자료 5종 216점, 등록문화재 691점 등이 지정문화재로 등재돼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의 장판각과 수장고 등에 보관된 국학자료는 모두 420,149점으로 국대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호남지역에는 문집 3,000여종과 지방지 2,000여종, 고서 20만여권, 고문서 10만∼15만점, 고서화, 고목판 등이 남아있어 정신문화의 보물창고와 같다. 도난이나 훼손, 유출 등으로 인해 머지않아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는 기록문화유산들을 체계적으로 보관하고 연구하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한국학호남진흥원’을 설립해야 한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수집한 국학자료를 연구하고 그 성과를 디지털 콘텐츠와 서적 등의 형태로 담아 그 성과를 연구자들과 그것을 필요로 하는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 문화산업 현장 등에 보급하고 있었다. 또한 전통문화와 가치에 토대를 둔 ‘전통문화 체험연수 프로그램’과 ‘국학교양강좌’ ‘미래세대를 위한 무릎교육-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사업’ 등을 통해 민족문화를 전승하고 국학의 대중화를 선도하고 있다.

연구 성과 및 전통문화의 보급
‘한국국학진흥원’ 이용두 원장은 ‘한국학호남진흥원 나주유치위원회 준비모임’과의 간담회에서 “조선시대에 서울 외에 충청도 청주와 전라도 전주, 경상도 성주 등 3곳에 사고(史庫)를 두었듯이 호남에도 연구기관이 설립돼 ‘한국국학진흥원’과 협력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사업권역을 전국으로 하고 있지만 사실상 안동을 중심으로 한 영남이 주 사업권역이며 그 이상으로 연구범위가 확대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물론 우리가 나주에 유치해야할 ‘한국학호남진흥원’은 19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국학진흥원’의 오늘과 같은 모습이 될 수 없고, 또한 ‘한국국학진흥원’과 똑같은 사업을 해서도 안된다.

우리의 실정에 적합한 규모로 설립하고 좀 더 특성화되고 전문화된 사업영역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학호남진흥원’이 나주가 역사문화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내용을 채워주고, 호남의 정신과 문화의 뿌리를 찾아가는 연구기관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늦었지만 현실적인 설립방안 마련과 나주 유치를 위해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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