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대용장군 생가

  • 입력 2006.11.13 17:15
  • 기자명 예스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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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대용장군 생가 및 묘소 (羅大用將軍 生家 및 墓所)

 지정번호:전남도 기념물 제26호
 지정연월일:1977년 10월 20일
 소재지:전남 나주시 문평면 오룡리 472
 규모:정면4칸, 측면1칸, 초가지붕

1977년 10월 20일 전라남도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되었다. 나갑운이 관리하고 있다. 나대용의 생가는 남향 집으로 정면 4칸, 측면 1칸이다. 원래의 모습인 초가로 보존되고 있으나, 양쪽 끝 칸에는 다시 고친 흔적이 보이며 원래는 4칸 집이 아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묘소는 생가가 있는 마을에서 3km 정도 떨어진 산록에 자리잡고 있다.

나대용의 본관은 금성(錦城)이고, 자는 시망(時望)이다. 무예수업에 전념하여 28세 때 훈련원 별시(別試)에 병과로 합격하였다. 임진왜란 1년 전인 1591년(선조 24)에 전라좌수영 수사(全羅左水營水使)로 있는 이순신 장군을 찾아가 그 동안 연구한 거북선의 설계도를 보이는 한편, 국방에 대한 계책을 말하였다. 이순신 장군은 크게 기뻐하여 나대용 장군을 가까이 두고, 거북선을 건조하는 것을 비롯하여 모든 전구(戰具)의 준비 계획과 추진에 참여시켰다. 이에 임진왜란 때 거북선 3척을 처음으로 진수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왕조실록》 《충무전서(忠武全書)》 《난중일기》 등에도 나온다.

나대용은 병선 건조에 정력을 쏟는 한편, 이순신 장군과 함께 옥포(玉浦)·당포(唐浦)·사천(泗川) 등 15여 회의 해전에서 왜적과 왜선을 무찌르는 큰 공을 세웠다. 임진왜란 후에도 새 전함인 창선을 창안 건조하였고, 남해현감으로 있을 때에는 쾌속정인 해추선을 발명하였다.

나대용장군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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