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번호 :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 전남 나주시 노안면 영평리 영안마을
경현서원은 나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조선유학의 정통을 대변하는 많은 인물들을 배향하였던 곳이다.
1583년(선조 16) 나주를 중심으로한 도내 유림들이 상소를 올림에 따라 김굉필 (1454-1504)을 모실 서원의 건립이 허락되었다.
그때 나주목사로 있던 김성일(1538-1593)이 적극 지원하여 이듬해인 1584년(선조 17)에 완공되었다.
당시의 서원터는 나주의 서문밖 대곡동(현재의 경현동 부근)이었고, 서원 명칭은 [금양(錦陽)]이었다. 김성일에 이어 나주목사로 부임했던 임윤신(任允臣)목사때 지방 유생 나덕준 등의 발의로 1589년(선조 22)에 정여창(1450-1504),조광조(1482-1519),이언적(1491-1553), 이황(1501-1570) 등 4위(位)를 배향하여 오현사(五賢祠)가 되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서원원장으로 김천일,정개청,안방준 등 호남의 명유(名儒)들이 임석하여 사풍과 학성이 인근에서 추숭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경현서원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1608년(광해군 원년) 중건을 보았으며, 1609년에는 호남유생 김선 등이 사액을 청하는 상소를 올려 [경현]이란 액호를 하사받았다.
그후 1693년(숙종 19)에는 기대승(1527-1572), 김성일(1538-1593)을 추배하여 모두 7위(位)를 제향하게 되었다. 이후 1868년 서원훼철령에 따라 경현서원 또한 훼철되기에 이른다(실제 훼철은 1871년이라고 전해진다). 현재의 서원건물은 1977년 영안마을에 이전
복원된 것이다.
당시 김희철, 유제수, 정동채 등이 크게주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