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완사천

  • 입력 2006.11.14 15:47
  • 기자명 예스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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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정번호 : 전남기념물 제93호
 지정연도 : 1986년 2월 17일
 소재지 : 전남 나주시 송월동 1096-7
 면적 : 10,261㎡
 분류 : 기타 문화재

완사천은 나주시청 정면 300여m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다. 나주시 청사를 현 위치로 옮길 때 이곳 주변의 택지조성을 실시하면서 원래 지반에서 약 6~7m 지면이 높아졌다.
완사천은 원래 조그마한 옹달샘으로 쪽박에 물을 떠먹는 규모였으나 이곳에 택지조성을 하면서 샘주위를 정비하여 직경 1.5m의 원형의 샘으로 만들었다. 이 샘물은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완사천은 고려 태조와 관련된 유적이다. 즉, 태조 왕건은 고려를 건국하기 전 이곳 나주를 몇차례 내려오는데 903~914년 사이 10여년 동안 네차례나 된다. 왕건은 이곳 완사천에서 당시 17세의 장화왕후를 만나 인연을 맺고 제2대 혜종을 낳는다.   
한편 이곳 완사천 일대에는 흥룡사와 헤종사란 사당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잇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흥룡사는 금강진(현 완사천 일대) 북쪽에 있는데, 태조 왕건이 장화왕후와 인연을 맺을때 장화왕후의 오씨가문이 대대로 살았던 터로, 혜종을 낳은 인연으로 건찰된 것이라 한다. 한편 혜종사도 역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혜종사재흥룡사중주인지금사지(惠宗祠在興龍寺中州人至今祀之)」라 조선 중기까지 혜종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모셔온 곳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하여 뒷날 이곳을 흥룡동이라 부르기도 했다.
고려말부터 조선말까지 나주의 향리들이 기록한 관청일기인 ""금성일기"" 또는 ""나주호장일기""에 세종11년(1429) 정월 이안관 전판서 운관사 장득수(張得修)가 혜종의 소상과 진영을 옥교자에 모시고 2월 6일 역참을 통해서 서울로 떠났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때 혜종사가 훼철된 것으로 보인다.
이 완사천은 나주(지방호족세력)와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는 과정에서 인연을 맺는 시발점이 되었으며, 또 이로 인하여 혜종을 낳았던 배경이 되고 있는 유적으로 이후 나주를 어향(御鄕)이라고 부르는 계기가 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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