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창계서원

  • 입력 2006.11.14 16:45
  • 기자명 예스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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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의 호를 빌어 명명된 창계서원은 나주시 가운리 광목간 도로 가에 위치한다. 원내에는 강화유수를 지낸 임영의 아우 임정(林淨:1654-1710)의 영정을 모신 매계영당(梅溪影堂)과 영성각, 임영 신도비 등이 있다. 그의 묘는 영암군 금정면 학송의 선영에 있다.

임영(林泳: 1649-1696)
조선 후기 문신·학자. 자는 덕함(德涵). 호는 창계(滄溪). 본관은 나주(羅州). 나주시 다시면 회진에서 일유(一儒)의 아들로 태어났다.
1665년(현종 6년) 봄에 아버지의 명으로 정관재(靜觀齋) 이단상(李端相)의 문하에 들었다. 생원시에 장원급제하고 1671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 독서당에 뽑혀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그 뒤 이조정랑(吏曹正郎)·검상(檢祥) 등을 거쳐 94년(숙종20) 대사간·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 등을 지냈고 이듬해 부제학이 되었다. 그 뒤에는 대사헌·전라도관찰사를 지냈다.

뜻이 크고 박식하였으며, 경사(經史)에 밝고 문장에도 뛰어났다.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중진학자로서 성리학에 밝았는데, 이황(李滉)과 이이(李珥)의 절충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이이의 이기불상리(理氣不相離)는 받아들였으나 기발이승설(氣發理乘說)에는 반대했다.
그의 절충론적 입장은 조선 후기 성리학사상 절충파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나주의 창계서원(滄溪書院), 함평(咸平)의 수산사(水山祠)에 제향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창계집》이 있다.

창계집(滄溪集)
임영(林泳)의 시문집. 1708년(숙종34) 동생 임정(林淨)이 편집, 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책 끝에 임정의 발문이 있다. 총 27권 14책으로 되어 있다. 권1은 시, 권2는 시·사(辭), 권3은 소차(疏箚), 권4·5는 소(疏), 권6-15는 서(書), 권16은 교서·전(箋)·제문·
기(記)·서(序)·발(跋)·잡저·상량문, 권17은 묘문·행장, 권18은 경연록(經筵錄), 권19-4는 독서차록(讀書箚錄), 권25·26은 일록(日錄),
권27은 부록으로 치제문·제문·만(挽) 등으로 되어 있다.  목판본으로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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