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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나주에 자긍심을 함께 심자”왕곡면 김상모씨의 고향정착에서 얻은 결실

만나서 반갑습니다

2007. 11. 05 by 마스터

1950년대 어린시절에 초목근피를 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의 생활은 천국과 같은 삶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과거 부촌 마을인 왕곡면 본향리 금산마을에서 7남중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가정이 양반가의 한량이시던 부친 김영한 옹보다는 한순임 모친의 손에 의존하다 보니 생활여건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는 김상모(60)씨는 과수원 33000㎡(자가 16500㎡ 포함)에 논 9000㎡등 이제는 남부러울 것 없을 정도로 가세를 키웠지만 과거를 생각하며 오늘 하루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영산강은 바다로 힘차게 흘렀다

“소나무 껍질과 무잎, 그리고 토끼풀을 먹어가며 허기진 배를 채우던 그 시간들, 그리고 군것질 대신에 송진을 떼어내 껌 대용으로 입에 넣고 씹었던 시절이 엊그제 같다”는 김 씨는 왕곡초 3학년을 마칠 쯤에 가족이 현재 살고 있는 덕산리 연동마을로 옮겨왔다고 말했다.

“이사 오기 전 방과후면 아이들이 주로 놀았던 곳이 옥곡리 방죽간에서 게를 잡으려 물놀이를 할 정도로 영산강의 물줄기는 힘차게 바다로 흘러갔다”고 기억한 김 씨는 가정형편상 16세가 되던 해부터 입하나라도 더 덜기 위해 남의 집에서 3년간을 일해 가며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다고 회상했다.

19세가 되던 해에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 김씨는 식당일에서부터 주물공장에서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가 69년도에 군대에 입대하기 위해 고향으로 낙향하게 되면서 나주를 완전히 떠나지 못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아내의 내조로 고향지켰다

74년도에 연애반 중매반으로 만난 부인 김애순(52)씨와 가정을 꾸리면서 양산에서 보성으로, 그리고 영암 덕진으로 이사를 다니며 바다에서 김발을 해보기도 하고 구들방공사와 초가집 지붕을 고쳐주는 목수일, 그리고 두부를 직접 만들어 팔기도 하는 등 4년여 동안 객지로 다녀봤다고 회상했다.

78년경에 부모님이 계시는 왕곡면으로 돌아 온 김씨는 고향에서 90년 초반까지 날품팔이를 하며 13여년을 보내게 되었다며 도시로 떠나려는 마음 꿀떡같았지만 고향에 남아 지금의 안정된 생활을 일구었다고 회고했다.

성실히 살면 언젠가는 희망이 보인다는 김씨는 91년부터 본격적으로 과일장사를 하기 시작하면서 92년 이장을 맡아 그만둘 정도로 장사는 잘되어 97년까지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 시절 영암독천, 강진마량, 해남, 그리고 완도까지 매일 5일장을 돌며 새벽 3시부터 저녁 11시까지 밤낮이 없이 장사를 했다는 김 씨는 인력으로 할 수 없는 위로부터 받은 축복이라며 물건만 실고 가면 동이 날 정도로 장사가 잘 되었다며 그때 일만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다고 잠시 말문을 닫았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겨울날 동파된 오르막길에서 부인 김씨에게 뒤에서 밀기를 부탁하며 고개 길을 넘어가던 일 등 위험천만한 일들을 전혀 모르고 했던 것이 미안하게 생각이 든다는 김씨는 그러한 자신에게 부인 김씨는 34년동안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7형제 기둥으로 모든 가정사를 도맡아 가사를 일으키며 내조를 해왔다며 표현은 잘 못했지만 그 고마움은 언제나 잊지 못한다고…….

나주에서 소비하는 풍토
조성 되어야

나주는 광주에 인접해 있는 도시이다. 그러다 보니 광주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소비라도 나주에서 하는 풍토가 바람직하지 않겠냐는 의견을 내비친 김씨는 나주의 소비가 너무 경직되어 있는 것 같아 우려된다고 언급했다.

다년간 장사를 하면서 타 지역의 분위기와 나주를 많이 비교해본 적이 있다는 김씨는“축산업과 과수원도 많은 나주가 완도나 가까운 영암 독천 활기차지 못한 것 같다”며“나주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지역에서 일어나 생기가 넘치는 고장으로 변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고 강조했다.

장학금을 받아가며 서울서 음악공부를 하고 있는 막내 희열이를 빼고는 9개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큰아들 희준이와 둘째 희철이는 나주에서 직장을 잡아 고향나주에서 함께 하고 있다는 김씨는“매일 밖에서 일한다고 아이들에게 제대로 돌봐주지도 못했는데 다들 바르고 착하게 커줘서 대견하다”며 배즙을 내기 위해 마당에 가져다 놓은 배를 고르며 손질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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