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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다도면 생활개선회 노명숙 회장과 고향

“봉사활동하면서 진짜인생 배워요”

2007. 04. 21 by 마스터


21살의 나이에 결혼한 이후 농촌을 떠나 본 적이 없다는 사람, 부끄러움이 많아 남 앞에서는 걸 무척 꺼려했지만 지금은 당당히 이웃을 위해 봉사하기를 즐거워하며 나서는 소박한 시골 어머니가 있다. 농촌에서 살다보니 부녀회장 20년, 여성의용소방대의 다도면 총무, 그리고 다도면 주민자치위원회의 간사 및 생활개선회 회장 등을 맡아 지역을 일을 해오게 되었다며 사회봉사활동도 몸을 아끼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노명숙(신동2구, 51) 회장이 바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하게 되는 그러한 어머니이다.

공산면 중포1구에서 부친 노창수 옹(80)과 모친 이덕순(70)사이에서 2남 4녀 중 장녀로 태어나 청소년시기까지 무탈하게 농촌에서 보냈다는 노 회장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광주로 올라가 2년정도 직장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

시아버지 5년 간병에
봉사활동 눈떠
 
그 시기에 친구의 소개로 부군 박주안(개인택시, 55)씨를 만나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는 노 회장은 남편 박씨가 고지식하지만 고향을 지금껏 지켜오면서 봉사활동도 펼쳐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모범운전자로 전남도지사상까지 받은 사람이라고 은근히 칭찬하기도….

76년도에 다도로 내려와 1년 뒤인 77년도에 결혼식을 올린 박 회장은 시집올 당시 낫질만 배워 왔는데 문중 땅 논 20마지기에 고추 농사 천평 등 그 많은 농사일에 날을 샌 적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1년 농사에 손가락의 마디가 불거진 것을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렸던 적이 생각난다며 웃어 보이는 노 회장은 이웃봉사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지병을 앓고 있는 시아버지의 병 수발을 5년간 간병하면서부터였다고 회고했다.

다도면의 여인들은 유독 온순하다는 노 회장은 다도에는 25명 여성자원봉사가 도움의 손길이 필요로 하는 이웃에게 매월 1회 밑반찬을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과거 다도농협(현 남평농협 다도지소)의 농가주부로 3년간 봉사, 봉사대 9988 농협부녀회장, 그리고 2006년도부터 생활개선회 회장을 맡은 지금에도 부활의 집, 수덕사의 집 등을 방문하며 봉사를 멈추지 않고 실천에 옮기고 있다는 노 회장은 봉사활동이후 10년 전부터 앞에 나서서 하는 봉사활동과 사회참여활동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즐거워졌다고….

편안하고 아늑한 농촌
이제는 못 떠나

한때 경제적 고통과 힘든 농사일에 고향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47세가 되던 해에까지 꿀떡 같았다며 빙그레 웃는 노 회장은 고향을 못 떠난 이유를 부군 박씨가 워낙 고지식해서 고향을 떠나지 않아서, 또 애들을 가르치느라고, 그리고 47세를 넘기고 보니깐 도시보다는 공기가 청결하고 자연이 살아 숨쉬는 농촌풍경이 더 편안하고 안정감을 더해 이제는 고향이 좋아져서 꾹 눌러 앉고 싶다고 말했다.

풍물 5년생에 MBC 얼씨구 학당 민요노래에서 상까지 받은 적이 있는 숨은 노래꾼인 노 회장은 학창시절 노래를 즐겨 부르며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봉사는 철저한 시간관리에서 가능하다는 노 회장은 농번기에는 보통 전날 밤 9시에 자서 새벽 4시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논에 나가서는 정오 12시경에 점심때가 되면 일을 끝내고 식사 후 집안을 마치면 곧바로 봉사하러 나서고 농한기 때에는 하루에 오전 오후를 번갈아 가며 두어 세 번 정도 봉사를 한다고 밝혔다.

부군 박씨와 장남 송열(32), 차남 경열(30, 광주정광중 역도체육교사), 장녀 수미(27)를 둔 노 회장은 자녀들이 무난하게 바르게 성장해 준 것이 고맙다고….

봉사하면서 달라 진 것이 있다면 봉사를 60세까지 하고 싶어 졌다는 것과 건강이 허락한다면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할 것이라는 생각을 지니게 되었다는 노 회장은 봉사는 계속해도 보람이 넘친다며 봉사 후 수고했다는 그 말 한마디에 더욱 힘이 용솟음친다고 언급했다.

또한 봉사를 하면 깊이 배우게 된다는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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