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종삼의 나주이야기

  • 입력 2011.12.16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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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남 박씨 시조를 명당에 모시게 된 유래



반남 박씨 시조산에 대해서 이애기헐까요. 반남 박씨 시조산이 시조가 말허자면 박응주 응준디. 옛날 쩌그 벌고개라는 그 아래 가서 고려 시대에 동네가 있었어라우. 그런디 그 동네가 있었다는 자취가 지금도 있제. 어츠게 있냐 허먼. 사람 사는 마을에는 동네 뜯어부르고 이렇게 계단이 지거던이라우. 어덕이 져. 그럴 것 아니요? 왜 그냐 허먼 여그 어식헌 디를 사람이 칫으먼 여그 깎아서 반반히 맨들거던. 그런께 여그가 어덕이 진 것이란 말이여. 그런 어덕이 있어요. 지금도 옛날 동네였다는 증거요 그것이. 사람 안 산 디는 그렇게 생긴 거이 없어. 그런디 거그 가서 홍처사란 사람이 살고 있었어 홍처사가. 홍씨가 처사 말 듣고 거그서 살었어요.

그란디 거그 가서 말허자먼 박응주 아들이 그런께 나주골 호장이었어. 박응주가. 고려 시대에. 그런디 인자 반남 와서 인자 죽었든가 어쨌든가. 그런께 그 아들이 즈그 아버지 묘를 옛날에 초분헌다 그러지 않소잉. 마고 땅에다 묻고 쓰지 묏을 쓰지 않애. 거긋다가 딱 이렇게 쌓아놓고 딱 인자 뭣을 덮어서 삼 년간을 지내요. 그러먼 그 안에 인자 썩을 것 아니요. 물 쏙 빠지먼 그 때서 인자 백골만 갖고 가서 묏을 정식으로 쓰는 것이요 쓰는 것이란 말이여. 지금은 마고 인자 묏을 쓰지만 옛날에는 그랬어요. 막 죽어서 갖다가 이렇게 모셔놓은 것을 초분이라고 그래. 초분. 그런께 초분이란 것은 무덤 분(墳)짜 처음으로 무덤을 맨든다 가식으로 이렇게 그런 뜻이제.

그런디 그 저 호장 아들이 그렇게 허고 산디 인자 홍처사 허고 인자 한 동네 살제. 그런디 가만히 보니까 홍처사가 무엇을 알어 응. 발써 처사라먼 옛날부터 처사 말 들은 사람은 참 유식허고 글이 그렇게 참 용허고 문장인디 사회에 출세를 안 헌 사람들 보고 처사라는 것이요. 이 산골짝에 살면서이 인자 은거헌 사람 숨어 사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처사라고 그렇게 헌디. 그란디 처사가 거시기 저 선비로서 없었은께 뭣이 곤란허지요잉. 옛날 발써 글 배워가꼬 처사의 명색이 양반 행세허고 인자 선비 행세헌다 그러먼 곤란헌 것이란 말여잉. 노동헐 것이 없이 일단 거시기 헌께. 곤란헌께 인자 나무도 해다 주고 인자 자기가 인자 뭣 좀 벌먼 생긴 것도 대주고 그렇게 허는디. 즈그 아부지가 인자 돌아가게서 초분해 놓은께 묫을 쓸란디 좀 섭리를 아는 것 같거던, 홍허사가. 그런께,

"우리 아버지 묘자리 한나 봐주시오"

그런께 거 홍처사가 지금 반남 박씨 시조산 거그 가서 그 때에 어트게 생겼는고이는 애기들 죽으먼 갖다 거그다 내부렀더라우. 묻지 않애 그다 내부리고 거그가 기냥 인자 그 나무, 황수나무라고 잎사귀 가서 가시 붙은 그 황수나무 그런 나무가 기냥 아조, 그런께 거그가 가장사리여 가짜 장사(葬事)허는 디. 가장사리라는 것은 가짜 장사 가짜로. 애기 죽으먼 갖다 내부리고 어쯔고 기냥. 그랬기 때문에 나무도 숲도 까득 차고. 그렇게 참 험허게 생긴 데란 말이여. 그란디 홍처사가 거그를 묏자리를 보고 인자 늘 가서 보고 나오고 보고 나오고. 질이 인자 반질반질 질이 나부렀어. 그래가꼬는 꼭 묘 쓸 디가 딱 좋다고 좋다고 자기가 알고 있는디.

그 홍처사 부인허고 호장 아들허고 참 또 이웃에 살고 그랬지만은 또 인자 친절히 지냈단 말이요. 그런께 홍처사 부인이 호장 아들 보고,

"저기 영감님이, 저그를 들어갔다 왔다 헌께, 슬그머니 가보라"

고. 그래가꼬는,

"가다가 영감이 들락날락 허는 자취가 있을 것이라고 그러먼 나중에 영감님 보고 '내가 어디 묘자리를 봐놨은께 좀 가서 보고 말씀 좀 해주시오' 그렇게 해서 허라"

고 딱 시켰단 말이요 홍처사 마누래가. 그런께

"그러겄다"고. 그러고는 대처 인자 홍처사 보고 그랬어.

"아이, 우리 아버지 묫을 어디다가 좀 정식으로 써야 쓰겄는디 내가 봐놓은 자리 있은께 한 번 가서 봐주실라우?"

그런께.

"으응 그럼 그래라. 그러소."

아, 가는디 아, 고리 가거던. 자기가 날마다 댕이다시피 허는 디를 가. 그런께 모르게 댕이제 눈에 안 뜨이게이. 거그 가서는

"아 나 요런 디가 쓸까 어째 좀 여긋다 모실까 허요. 그런께 좀 봐 주시오" 헌께,

"에이, 저그 못써. 높으잖애? 거그 명당 되아서는 큰 일 나네그려"

"아니라우. 나 선생님이 여긋다 쓰라 안 해도, 내가 써도 기냥 내 아무케나 써불라우"

아 이라거던. 아 그런께 인저 요그 묏자리 영 뺏겼어. 아 이거 어째 안 가르쳐줘도 지가 써부린다 헌께 써부리먼 인자 뺏긴 것 아니요잉? 자기가 못쓰게 헐 권리도 없고. 그런께는 '하-아. 이거 어쩔 수 없구나. 저기가 저 놈 복이로구나'

허고는 "아 그러먼, 내가 정식으로 가르쳐주마."

그래서 날을 딱 개렸단 말이요. 인자 묘 쓸 날짜를 딱 개려가지고는 거그 가서 묘를 쓴디 사람을 인자 그런께 묏을, 숲을 좀 쳤제. 인자 저그가 나무, 황수나무가 가시나무 있는 만을 잔등이서 치고 딱 거긋다 묘를 쓰는디.

묘자리를 딱 이렇게 가르쳐주면서. 말허자먼 묘 뜰을 판단 말이요. 명당, 명당떼라고 처음에 한 장을 판니이다. 기냥 딱 파서 여긋다 딱 놔 둬 그래가꼬 묏 다 쓴 뒤에 최후에 지 뽕아리다가 그 명당 뜨느라고 먼저 뜬 떼를 거긋다 올려놓는 것이여. 그런디 이 풍수가 딱 가르쳐주고는 "내, 여그서 명당 뜰 때에 내가 집이 갈란께 집이 가서 방에 들어간쯤 시간이 되먼 파기 시작해라" 그랬어. 그런께 인자 "그럴란다"

허고 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디 거그 뫼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해본께 집에 들어갔을성 싶거든. 시간이. 거그서 얼마 안 되여라우, 거리가 얼마 안 돼야. 여그서 저 건너 가기만 헐 것이요. 그 때 옛날 그 살었는, 홍처사 살었던 동네가. 반남 박씨 시조산 묫허고, 묘자리허고.

그런께 요리 한 꺼팍을 딱 파서 명당 자릴 탁 파니께 큰 바구리만헌 벌이 나오드라우. 벌이 나오더니 홍처사 집이로 가. 가드니, 홍처사가 문 열고 막 들어갈라는 판에 그 벌이 머리수박 쏴가꼬는 그 자리서 죽어부렀어. 그 벌이 없애버렀어. 그것이 말허자먼 살이여, 명당의 살기. 살. 살긴디, 인자 명당에는 그런 살도 있고 뭣도 있고 그런 물체가 나오는 디도 있어라우. 명당이 있는 것이여.

그래서 그 명당 결을 보먼, 옛날에 그 명사들이 말해 논 것을 보먼 '나주남사십리(羅州南四十里)에 호산북거십리(虎山北距十里)'

응, 나주남 사십리, 나주서 저그 호산이란 디가 사십리가 되요. 여그서도 나주를 사십리 놓고 댕이거던. 그런디 북거십리, 호산서 거그가 한 십리나 되어라우.

'북거십리허에 양류도수가 있다'고 딱 그리 써져 있단 말이요. 양류도수, 버들가지가 물에 잼긴 명당. 양류도수. 도수라고 꺼꾸로 될 도짜, 물에 꺼꾸로 잼겨있다 그런 뜻이여.

그런디 거 뭣이냐? '요것을 파먼 황벌이 나올 것이다. 벌이 나오먼 인자 인명을 살상헌다.' 그렇게 써졌어요.

써지고 인자 묘자리 인자 그, '목복이 가득이라.' 목복이 가득이라고, 목복이 가히 얻을 것이다 그 땅을. 목복(木卜)은 여그 박가(朴哥)여. 나무 목(木)변에 점 복(卜)헌 자가 박가여.

그러니 박가의 땅이다 그 말이여. 그런께 홍씨는 복이 없제, 자기 자리 아닌께. 그 임자가 다 있는 것여라우.

그랬는디, 그래서 그 때보틈, 요쪽으로 인자 거그서 뫼 있는 디서 여 영암 시종서 가는 찻길이 인자 저그 있는디 거그가 옛적부터 고개여라우 고개. 거그 보고 벌고개라고 그런단 말이요, 벌고개. 그런디 이 고개가 거그서 고개 한나 있제. 저그 저리 넘어오는 뱀굴잔등이라는 또 고개 있제 요 건너에 또 고개 있제. 여그가 고개 있제. 고개가 셋이 나란히 요렇게 조록이 있어라우. 괴상시럽게. 요렇게 생긴 곳도 없소잉. 그런께 요거이 뭐이냐? 벌이 저 산에서, 저그서 이리 날아서 고개 넘어서 고리로 들어가는, 그러는 고개라고 벌이 날아댕이는 고개다 이것이여. 요렇게, 조록이 요렇게 생인 디가 없어라우 선이. 이 고개가잉 이렇게 닛이 조롯이 있어요. 그렇게 붙이서 말을 해요.

* 1998년 6월 9일 벌명당을 답사하면서 들은 이야기를 부연하면 옛날엔 백양골이었지만 지금은 성내마을로 불리고 있는 마을 뒤의 고개와 반남고분에서 벌명당으로 넘어오는 고개, 북두로 넘어가는 고개, 제보자의 집에서 넘어가는 제비재라는 고개, 이렇게 네 고개가 벌이 날아다니는 길라고 하였다.



(2) 도장(倒葬)한 박씨 묘

* 반남 박씨 시조산에는 아랫 쪽에 시조인 박응주의 산소가 있고 그 위쪽에 손자묘가 있다. 여기에 대한 설명을 들려 준 것이다.

손아래 사람 묫이 우게가 있는 거. 손자가 인자 할아버지 우게가 안 묻혔소? 그것보고 묏도장이라고 그래, 도장(倒葬). 그런께 아부지나 할아버지 묫 우게 가서 손자가 묻힌 것이, 수악사니 묻힌 것 보고 도장했다고 그려.

그런께 여긋다 뫼 썼는디, 여그도 명당이지만 그 우게가 또 명당일 것 같으먼 그렇게 써요. 그런디 그렇게, 잘 안 쓴디, 그렇게 쓰는 자리가 있다, 있기도 허고. 그렇게 쓰어가꼬, 묏도장 해가꼬 또 자손이 해보는 수가 있어요. 해를 봐. 함부로 그러는게 아니여.

그런디 여그는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뜻이 있어라우. 왜 그냐 허먼, 벌이 벌통을, 집을 짓으믄, 언 놈이 이렇게 짓으먼, 자기네 밖으로 안 짓소? 밖으로 나와 짓어. 그런께 벌, 벌통이가 언 놈이라고 허먼, 저그 밖으로 나가 짓은께, 손자나, 알고 있는 손자가 거긋다, 뫼를 써도 괜찮다 그런 뜻이여. 알아 먹겄소?

밖으로 짓은 놈이 나중에 생겼어. 그런께 나중에, 후손이 우에가 써부렀어. 그런 뜻이여.



(3) 인수가 있는 벌명당

* 반남 박씨 시조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돌무더기와 샘은 벌명당의 인수이며, 원래 이 돌무더기와 샘은 훨씬 컸었는데, 도로공사할 때 묻혀서 작게 된 것이라 한다.

인은 도장이고. 수는, 인수는 인육. 도장, 빨간 인육. 고것이 물기 아니요? 도장밥. 고것이 인수여. 도장 인, 도장 인(印)짜 물 수(水)짜. 도장물이라 그 말이여. 그런께 도장 갖고, 인 찍어가꼬,

"너, 전라남도 지사 하거라."

허고 도장 콱 찍어서 임명장 주고.

"너, 평양감사 하거라."

허고 도장 꽉 찍어주고. 그런께 인자 여그, 요 묏이 말허자면 그렇게잉, 이렇게 형체가 생겼기 때문에, 그래서 말허자면 고관대작이 많이 났다 이것이여. 명당이라고 다 이렇게 있는 것이 아니예요. 대명당이요, 그런께.

그런디 더 컸어. 묻어부렀어. 요렇게 묻을 디가 아니지라잉. 새암도 더 컸는데, 다 버려부르고. 옛날 요 바위가 잘 생겼어라우. 이치 모르고 그냥 온 사람덜은 명당이란께 명당인가 보다 허고 그러는데, 참.



(4) 장원급제가 이백 칠십 명 나온 반남박씨 묏자손

* 벌명당 앞의 묘역이 지금은 넓게 잘 정리되어 있으나, 원래는 굉장히 좁았다고 하며 들려준 것이다.

묏 앞에서, 별로 절 설 디가 없었더라우. 절 설 디가 없어. 좁아. 어땠냐 허먼 요 밑이가 전부 크은 못. 못이라고 허먼, 아요? 못 지(池)짜. 못. 물, 큰 새암. 늘 시암이 있어. 그런께 절헐 디가 좁았어요. 그런께 후에, 자손이 이렇게 미어부렀지. 미어가꼬 맨들았제.

그런디, 요 밑에 내려가먼 논에도 맨 수랑이여라우. 그런께 여그가 물로다 둥둥 뜬 디여. 그런께 버드나무 가지가 물에 잼겼은께, 사방이, 전후사, 다 사방이 물이었을 것 아니요? 그런 형국인께, 명당 형국이. 버드나무가 물에 잼긴 형국. 그래서 양류도수. 양류, 버들가지가 물에 꺼꾸러졌다.

그런디, 왜 벌명당이라 하냐? 꺼꾸러진 버들가에 와서, 벌이 안거서 물을 빨아. 물을 찍어, 응. 버들가에, 버들가지, 물에 잼긴 버들가에가 벌이 안거서 물을 찍어. 그런께 벌명당이라고도, 그렇게 인자 두 가지 이름을 붙이지라잉. 그런께 말하자면 저 산(벌명당 옆에 있는 백호등)이 벌체여. 저 산이.

벌, 벌 형국. 벌 형상이란 그 말이여, 벌체. 벌체 안 생겼습디여? 그런께 요것도 뒤에 보먼 말이여이. 요그 등 위에 비석처럼 생긴, 등이 저그서 내려왔어라. 저쪽으로, 저쪽으로 한 등이 쫙 이렇게 벌어졌제. 요것이 벌 뒷발 둘, 딱 벌리고. 그 새에 가서, 쩌그 새에 가서 쩌그가 조 놈이 벌 같 뵈아라 인자. 그 가운데가, 거그 가서 벌침이, 벌침이 쪼옥 뻗아가꼬 있어. 그게 벌침인디, 또 그것 보고 꽃명당이라고도 해라우. 꽃명당이라고 그런디, 벌침이 맞는 말이여. 그런께 벌은 꽃에 가서, 인자 말허자먼 그 청을 빤다고 해서, 그 인자 꽃명당이다 허는디. 그렇게도 허고, 그 말도 맞고, 저 말도 맞고 그래라우.

그런께, 그래서 먼저 이애기했지만은, 이승허고 박승허고 명사, 풍수. 그 명사가 이 앞으로 지나가먼서 요 곳 보고는, 박승이,

"벌 봐라!"

그런께. 이승이 뒤에 따라가먼서

"벌은 벌이다만은, 웬 주뎅이가 저렇게 지냐?"

주딩이. 아, 여그 여, 빠짝 밑에 가, 그 옛날에 못이 있는디, 그걸 미어가꼬 이렇게 널비 뻗대놨은께, 헛것이 붙었다고 해서,

"주둥이가 지냐?"

그렇게 알았어요.

요것이, 요 등 내려온 것이 버드나무 가지여, 가지. 여그 등, 그런께 묏 쓴 등 내려온 것이. 그래가꼬 그 가지가 물에 잠겼어. 여그가 옛날 큰 샘이 있드라 그 말이여. 물 나는 큰 샘이. 또 여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요 구석지, 여그도 샘이 있고, 요 구석지 여그도 샘이 있어요. 그런께 사방이 물이여. 그런께 물에다 잼긴 버들이기 때문에, 사방이 물이야 쓸 것 아니요? 저 논에도 맨 수랑이라. 물 나는 수랑, 논도. 그런께, 버들가지가 물에 잠겼은께 사방이 물이어야제. 그런께 여그가 큰 샘이 있었고, 요그가 인자 묏자리가, 묏을 써놓은께, 앞이 절 허기가 좁아요. 그런께 이렇게 인작으로 맨들었지, 인작으로.

그런께 정승뿐만 아니라 인자 여그서 자손이, 말허자먼 장원급제. 장원급제라고 허먼, 말허자면 요새로 비교허먼, 고등고시 시험을 쳐가지고 말허자면 그 비교헐 때, 판사시험, 검사시험 본다 안 합디여? 여기 합격해가지고 검사시험 보고, 그것에 비유허먼 되제. 그래 가지고 또, 뭐 알상급제, 도제관이라고 특별관을 뵈이먼 그 때는, 인자 큰 벼슬을 줄라먼 그런, 시험을 뵈인디. 말허자먼 장원급제가, 장원이라는 것이 일등했다 그 말이여.

장원급제가 이백 칠십 명이 났어. 이 묏 자손이. 이백 칠십 명. 그런께 그 이백 칠십 명 중에 가서 인자, 정승도 있고 판서도 되고 그랬제. 아, 대명당이여. 여기가.



(5) 벌통의 형문관 위치에 있는 반남면 지서

* 반남 박씨 시조묘를 떠나면서 그 건너편에 있는 산과 지서를 가리키며 이야기해 준 것이다. 이 이야기가 끝난 후 벌명당의 양쪽에 샘이 두 개 있었는데 그것은 벌의 눈에 해당된다는 이야기도 했다.

저 건너 묏이 벌명당인지 안다우. 그렇게 알아. 저그 가서 저쪽에 가서 또 있어. 뵈이요? 쪼깐 뵈이오? 뽈갓. 비석도 뵈이고. 거그가, 그것이 벌침이여. 그것이 말허자면, 벌명당, 저 박씨들 시조산인 줄 알아. 얼른 생기, 고것이 좋게 생겼는디, 여그가 진짜여. 그런디 여그 와가꼬 또 풍수들이, 요 윗 묏이 인자 옳은 명당인지 알아. 그 밑이 묏인디. 그렇게 잘 못본단 말이여.

그런디 여그를 오길, 보먼 풍수들이 무조건 좋다고 허거던, 아주 좋다고 이름 나부린께. 자기가 나쁘다고 헐, 그런 의견도 재주도 없지만은 또, 나쁘다고 해봤자 누가 뭐허지도 않고. 나쁘다고 헐 인자, 했음 오히려 자네가 뭔데 허고 미리. 어떤 풍수 한나가, 이런 묫을, 눈에 묘사와서 평헌 사람이 있어라.

"잘 못썼다. 잘 못썼다. 요 묏이, 뫼 쓸 때, 속에 말허자면 시체를, 무슨 좌를 놨고 이렇게 썼으먼 쓴디, 그 자리 안 놨다고 허먼, 이것은 별로 명당이다." 그런 말을 했어. 그런 말을 거 함부로 못해라우. 어느 자리 와서 그런 비평을 헐 것이요? 그런께 그렇게, 그 풍수 말대로. 그런께 분금을 놔서 쓸 때, 그렇게 인자 해서 쓰고, 인자 겉에 복안으로 좌향을 조깐 틀리게 놓는 법이 있어라우. 그렇게 썼는가 모르제.

요리 뗏물 내려가요. 안 그러요? 요것도 이 묫이들이, 좀 조리 형체여. 어트게 항시 내려간께, 뗏물이여, 뗏물. 말허자먼. 사냥해가꼬, 와서 이렇게 들어오는디, 사냥 안 허고 빈 걸로 오먼, 문지기가, 그것이 문지기여. 문지기가 있다가 그 놈 잡아 죽여버려. 그러거던. 그, 저것이 말허자먼 형문관 아니요? 그 이치를 딱 생각헌께, 맞겄게 또 짓어가꼬 있어, 이상허게. 누가 짓으라고 그런 것도 아닌디, 그렇게 짓어가꼬 있어라우. 예전, 그전에는 일한합방해가지고 저거 인자, 요 넘어에 배암골이라는 디 가서 주재소가 있었어라우. 그때는 주재소라 했어, 경찰관 있슨 데. 그 뒤로 요리 욂겼어라우. 욂겼는디, 저긋다, 꼭 저긋다가 썼어. 그런디 그 묘가 고렇게 이치를 붙이고 있어, 안 맞소?

장(場)이 그 전에는, 저 건너에, 저그 뵈는 산, 거그 가서 있었어라. 그런께 박씨들이,

'벌떼가 벌통에 가깝게 놀아야제, 멀게 노는 놈이 더 안 좋다.'

그래가꼬는 장을 요리 욂겼어라, 가깝게. 이 묏에 가깝게. 그 장꾼들이 벌이여. 그렇게 이치를 맞혀가꼬, 그렇게 장을 여긋다 당겨 세웠어요. 저어 건네 보고 구장터라 그러라우, 구장터. 옛적 장터다 그런 말이오.



(6) 반남 박씨 땅 안에 있는 고씨 묘

* 시조묘에서 나종삼 옹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묘를 보며 들려준 것이다.

고씨 묏이여라우. 그런께 우에, 요리가 전부가, 그 박씨들 땅이요. 요 산도 그러고, 요그 앞에 들도 그러고. 저그, 인자 재각에 가서 보먼, 앞으로 뵈이는 산이 있어요. 그 옛날, 그랬다고 헙니이다. 재각에 안거서, 이리서 내려다보고는,

"저어그까정 내 땅이다."

그래 부렀다고. 그래가꼬 다 차지해부렀다고, 양반 권세로. 다 가졌다니께.

그런디 재산을 경영헌 사람이, 고씨헌테 저 땅을 팔아먹었어라우. 그래가꼬는 그 뒤에 인자, 고씨가 또 묏을 썼거던. 그런께 요 골창, 요 언더리 묏은 전부 타성 묏 없소, 박씨들 묏이제. 타성은 와서, 범허들 못했는디, 고씨가 묏을 딱 써놨거던. 그런께,

"저 뫼 파내라."

고 했어. 그런디 법적으로 자기가 땅 사가꼬, 이전 딱 해가꼬 자기 땅에 묏 썼는디, 파질 것이요? 그래 재판이 났어. 그래가꼬 재판을 오래 했소. 그래가꼬 패륜허고 인자, 못 이기제잉, 법으로 해서, 현 법으로 해서는. 옛날법 같이, 이조시대 같으먼, 법이 무엇이여? 재판허겄소?

"너 이 놈, 파내라."

허먼, 안 파내먼 저 죽제. 옛날 양반 세력 같으먼. 그런디, 이제 박씨들이 그랬단 말이요.

"땅을, 묏 쓸 땅을 우리가 주마. 사주던지, 줄 것인께, 얼마를 줄 것인께, 파내라."

고. 그래도 고집 부리고 안 파냈어라우. 그래가꼬 기어이 저 사람들이 이겨부렀어. 이기게 안 되어가꼬 있소? 지 땅에가 저 쓰는디, 누가 뭐, 어츠게 헐 것이요? 그런 일이 있어.



(7) 문중에 대과 나려면 훤해지는 반남 박씨 시조산

왜정 땐디. 그 때 반남 시장에 가서, 일본 사람이 두 사람이 살었어요. 한나는 고도라 허고 한나는 다나시라고 인자 두 사람이 살었는디. 들어보먼요, 나주군내에 인자 어디나 일본 사람이 안 산 면이 없거든이라잉. 물론 군소재지는 더 많이 살었고 면소재지도 들어가 산디. 일본 사람이 반남 와가꼬는 잘 된 사람이 없다우. 안 되아요. 다른 면에 사는 사람은 잘 된 사람이 있는디, 반남서는 없어.

그래 다나시라 허고 고도라는 사람이 두 사람이 살었는디. 다나시는 살다가 기냥 떠나부러고, 고도라는 사람은 여그서 말허자면 일한, 앗따 저, 해방. 우리는 해방인디 그 사람은 해방이 아니제. 일본 그 인자 황제가 항복헌 뒤에 인자 본국으로 가버렸지라잉. 그래 다나시라는 사람이 반남시장에 살 때, 저 영산포 인자 광주 어디를 갔다오던가. 그 때는 차도 인자, 뻐스가 안 댕였지라잉. 걸어 댕인다든가 안 허먼 자전차 타고 댕였다든가 허제.

근디 밤에, 이 벌고개. 거글 넘어서 인자 거그 벌 명당 있는 동네. 그 묏 앞에 거그 질로 고리 가요 인자, 자기 가니라고. 간디, 박씨들 시조묘 거 가서 훤해요, 전기킨 것만이로. 훤해.

'무슨 일인고? 박씨들이 저녁에 지사 지내는가잉? 어쩐가?'

훤헌께. 달밤도 아니여. 헌디 훤해요. 달도 별로 훤치 않게 있는디, 훤해.

'그거 이상허다.'

그러고 인자 갔단 말이여. 가가꼬는 그 이튿날, 그 박씨들 시조 사는, 그 수원 사람. 말허자먼 산지기. 산지기헌테 왔어. 와서는,

"나 간밤에 이러저러 여그를 지내가는디, 그 박씨들 선산에서 엇저녁에 뭔 행사했냐?"

고.

"아니, 그런 일 없다."

고.

"그래야?"

허고는,

"네가 엇저녁에 여그를 지내는디 선산에 가서 훤해가지고, 불이 켜져가지고 훤허드라."

고.

"그래야?."

고는,

"참 희귀헌 일이라고."

그래 서로 이상허게 생각허고 있는디. 그 고지기가 서울 박씨들 문중으로 그런 일을 인자 말허자면, 보고를 했어요. 알렸어요. 알린께, 답이 오기를 뭐이라 왔는고이는,

'무슨 일에 큰 대과가 날라먼 그런 징조가 있다.'

그렇게 답이 왔더라우.

그런 이애기가 있어. 그런께 그것도 우리 조선 사람이나 그런 사람이 인자 말했으먼 거짓말 지어서 했는갑다 헐꺼인디, 아 일본 사람이 일부러 와서 말허드라게. 자기도 뭐 생각컨데, 그 이상헌 무슨 감이 들어갔든 모양이제. 그런께 낮도 아닌 밤인디 그렇게 훤헌께 인자 그래서 와서 인자 그 박씨들이 밤에 무슨 행사 지냈냐고. 그런 일 없다고 헌께, 그런 얘기 허드라요. 그런 이애기가 있어요.(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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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남박씨 사조묘는 반남면 흥덕리 봉현 근처 자미산 줄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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