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된다

  • 입력 2011.12.1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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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중학교에서 잠깐 국어교사로 근무한 적이 있다. 대학시절 국문학을 복수전공하면서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쳤고 결국엔 교생실습까지 나가게 되었다. 즐거워서 시작했던 국문학공부는 스물셋의 혈기왕성한 나로 하여금 학창시절 느꼈던 입시위주의 학교교육을 모조리 바꿔놓고야 말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갖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임용시험을 보고자 마음먹은 그해 겨울, 대학에서 진행하는 독일 Leipzig 대학의 언어연수를 가게 되었고 그렇게 우리가 말하는 인생의 전환점(turning point)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불쑥 삶의 가치관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음을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그때는 유럽에서 문화적 충격을 겪고 돌아와 홀랑 마음을 빼앗긴 후였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길지 않은 시간동안 머물렀음에도, 나는 유럽 곳곳을 여행할 수 있었고 세계대전을 거쳐 부서지고 깨어진 형체를 그대로 남겨, 관광지로 거듭난 공간들에 흠뻑 빠져 돌아왔다.

프랑스 아비뇽(Avignon)의 <부서진 다리>에서 느꼈던 지난 흔적들에 대한 그네들의 애정과 영국 바비칸 센터에서 진행되는 상상력 가득한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은 결정적으로 임용을 그만 두고 문화예술기획자를 꿈꾸게 하는 전환점이 되었으니 말이다.

대학원에 진학해서 한참동안 발품을 들여가며 역사가 서린 고장을 찾아 돌며 거주민과 공간의 이야기들을 조사했다. 차츰 오래된 공간에 서린 오묘한 느낌의 존재가 미술작품들이 풍기는 이미지와 다르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내 고향땅에서 실감했다.

공간에 서린 아우라(AURA)를 읽어내기 시작하면서 지난 기억 속에 묻혀 있던 대학시절 유럽에서 나를 끌던 그것의 정체가 밝혀지기 시작했다. 오래된 장소와 건축물을 보존하는 그네들의 삶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재해석되어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긍지와 자부심으로 드러나던 것!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매개가 되고 있는 공간. 그 안에 존재하는 수 많은 인간, 삶, 역사, 정서, 이것이 문화였다. 거주민을 문화공동체로 모여들게 하고,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난 고장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으로 고장의 환경을, 역사를 변화하게 하는 데는 문화예술교육이 매체가 되어 움직이는 그네들의 삶의 패러다임이 원동력으로 읽혀지는 순간이었다.

내 고장에도 그런 곳이 드문드문 보였고 보존과 현대적인 활용에 대한 시선의 절충과 전환이 절실함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주민이 스스로 참여하여 활동할 수 있는 작동기제가 필요했다. 공간과 맞물려 돌아가며 주민인식의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무언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무언가 변화를 시도하려 하던 차에,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던 공간의 일부가 4대강 사업에 의해 부서져 내렸다. 다양한 시선으로 그곳을 바라보는 이들의 관점은 존중할 수 있으나, 다소 폭력적인 방법은 아니었는가에 대한 성찰과 반성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앞으로 무너질 공간들도 마찬가지이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무너지는 공간들에 이제는 모두가 애정 어린 관심과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고민들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근대성'을 한껏 머금은 그곳에 대한 기록이 먼저라는 생각에서 우리지역 아이들을 모집했다. 학교교육이 변화를 시도하는 가운데, 창의적 체험활동이 교과과정으로 수업시수가 정해진 것은 아이들에게도, 내게도 행운이었다.

역사를 사랑하는 아이들의 시선은 고대나 조선에 머물러 있었다. 멈추어진 아이들의 시선을 '근현대'로 돌려놓으려는 시도를 시작하기로 했다. 역사를 우리가 서 있는 '지금'으로부터 시작하여 바라보는 관점은 프랑스 바깔로니아의 철학적 성찰인 '존재'에 대한 고민과 마주한다.

오랜 시간 끊임없는 조사활동을 통해 선창공간 골목, 어느 귀퉁이에 옛 모습을 그려 놓은 지도를 설치하자! 격동의 시간인 우리네 근대를 기억하는 흔적을 우리고장의 미래가 문화예술이라는 매개를 통해 지표를 설정하는 작업! 이 바로 목사골역사탐험대의 2011년 목표이다.

6월초...우리는 다시 그곳의 골목대장이 되어 시퍼런 기억의 흔적들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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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바비칸 센터 : London 에 있는 육중한 콘크리트 건물로 세계대 2차대전 당시 폐허가 된 바비칸 지구의 흉물이었으나, 복합문화예술센터로 태어났다.

1982년 문을 연 건물로 연극, 발레등의 프로그램들이 수시로 진행된다. 도서관, 전시장, 극장, 영화관, 레코드사, 창작공간 등이 다양하게 있어 유아에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하나의 지붕 아래 모든 모든 장르의 예술이 집합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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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아비뇽 역사지구의 생베네제다리 (일명, 부서진 다리) 는 론강(Rone) 을 가로질러 위치한 다리로 성직자가 성금을 모아 다리를 건설했다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 온다. 17세기에 부서졌으나 그 모습을 그대로 가진하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찾는 곳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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