놋쇠와 유기

  • 입력 2013.07.06 18:40
  • 기자명 양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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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밥상은 크고 작은 원형의 찬기에 김치, 나물, 조림 등의 반찬을 담고 갓지은 윤기가 반지르르 흐르는 따끈따끈한 밥을 금빛공기 유기에 담아 상을 차려 식사를 한다

20년여년전 나주로 시집을 와서 시댁에 살 때 시아버지의 밥그릇과 수저는 놋그릇이었다.

지금의 밥공기에 비해 상당히 큰 그릇이었다. 당시에는 떨어져도 잘 깨지지 않은 코렐이라는 식기셋트가 유행하고 유명한 회사의 자기셋트를 혼수를 해가는 것이 필수였던 시기였기에 유기그릇에 식사를 하는 모습은 다소 생소했다.

근대화 과정에 플라스틱과 알루미늄, 스테인레스에 자리를 넘겨주고 연탄가스에 노출이 되면 부식이 심해져서 때가 되면 기왓장을 깨 가루를 내어 지푸라기에 묻혀 박박 문질러 광을 내야 했던 수고로움은 우리 시어머니에게는 애물단지였다.

시댁의 각종 놋쇠로 만든 놋그릇, 화로, 세숫대야 등은 창고 귀퉁이에 잠을 자야 했고 동네마다 돌아다니며 엿장수 가위 소리를 내던 고물장수에게 빨랫비누 몇장과 바꾸려던 것을 살림을 나면서 내가 챙겨 나왔다.

놋그릇 바닥에 송월유기라는 생산공방의 명문이 지나간 세월의 무게에도 거뜬히 버티고 뚜렷히 남아있는 것을...

과거 나주 송월동 송현 마을에는 광복 전부터 남사윤 이라는 분이 경영하는 송월 유기 공방이 있었는데, 1963년 광공업 센서스 보고서에도 나주에 산업시설로 기재되어있었다.

수공업 형식으로 생산되었는데 읍내에 판매점을 두고 판매하였고 나주뿐만 아니라 영암등 인근 까지도 팔려나갈 정도로 유명하였다.

비빔밥으로 유명한 전주와 진주, 돌솥비빔밥의 지글지글한 소리와 강렬한 냄새도 좋지만 나물, 황포묵, 달걀지단, 다시마, 부각 등 오방색을 맞추어 한 그릇에 우주를 담아내는 비빔밥의 화룡점정은 금빛 놋그릇 비빔기였을 것이다.

냉면도 플라스틱이나 스테인리스 면기 보다는 유기에 담겨 나오면 시원함과 신선함이 오래 유지되어 그 맛을 더한다.

유기에 음식을 담아 먹거나 보관하면 식중독을 일으키는 o-157균, 비브리오균등에 살균 효과가 있다고 한다. 구리 78%, 주석 22% 황금 배합비율로 두드려 그릇을 만들면 황금빛 금그릇 방짜유기가 만들어진다.

그 옛날 사라져 버린 송월 유기 공방의 세숫대야, 화로, 반상기 등이 우리집 거실에 장식, 진열 되어 있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지만 조상들의 숨결이 배여있는 물건에 눈길을 돌려 애정을 가지고 틈나는 대로 수집하다 보니 400종류, 3,000여점에 이르고 있다.

다양하고 진기한 유기는 우리집 보물 1호이다. 종묘제사에서 사용하는 희준, 상준, 보, 궤, 반상기 세트, 제기 세트, 생활용기인 화로, 다리미, 먹물통, 담뱃대, 민속공예품, 놋상등 종류도 다양하다.

어떤 기물에서는 형태와 무늬에서 음양 오행과 상징적 의미가 내재되어 있어 한국의 미를 감상할수 있다.

생활 속 유물인 유기가 잊혀지고 외면 받고 있지만 조상들의 땀과 숨결이 밴 소중한 물건들에 대해 함께 나눌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가져 본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남루하고 흔한것이라 할지라도 많은 분들과 함께 보고 느끼는 작은 기쁨을 누리고 싶다.

끝으로 고철에서 국보로 운명이 뒤바뀐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있다.

화순군 대곡리에서 청동거울, 쌍두령, 팔주령, 세형동검 등이 1971년 우연히 발견되었는데 발견자는 오랜 세월 땅속에 묻힌 청동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지나가던 고물상에게 넘겼다.

하지만 안목이 있는 고물상은 신고를 했고 청동기 시대 영원불멸을 기원하며 부장했던 11점의 유물은 찬란한 유산으로 우리 곁에 있다. 엿장수 맘대로 신고를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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