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의병장 나성화 기념공원 추진

에코왕곡 부지일원에 기념비 세운다

  • 입력 2014.02.17 14:58
  • 수정 2014.02.17 15:03
  • 기자명 박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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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곡면 출신 항일 독립운동 유공자에 대한 공적과 가치관을 재정립하고 일제의 침략과 역사왜곡에 대한 민족정신을 재조명하여 오늘을 사는 후손들에게 애국심 고취와 호국의지를 함양키 위한 항일 의병장 나성화 기념공원 설립이 추진된다.

나성화 의병장 선양사업 추진위원회(위원장 박기연, 박상문)는 지난 11일 왕곡면 소재지 인근에서 기금마련을 위한 일일찻집을 열고 면민들의 참여와 관심을 독려했다.추진위원회는 오는 4월 26일(토) 왕곡면민의 날에 맞춰 나성화 의병장의 민족정신을 기리는 공적비를 면 소재지권에 위치한 에코왕곡 일원에 세우고, 주변을 기념공원화하기로 했다.

추진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나성화 의병장의 경우 직계 후손이 없어, 고인을 기리는 기념사업회도 없을 정도였는데, 오늘 일을 계기로 왕곡면 출신으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고인의 의지가 후손들에게 면면히 이어지도록 뜻 깊은 일에 면민들이 모두 나서주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한편, 항일 의병장 나성화씨는 1881년 왕곡면 송죽리 출신으로 1910년 7월 순국했다.

 
 
1908년 김옥균을 살해한 홍종우의 권총과 탄약을 탈취, 일본군 4명을 살해하고 다량의 무기와 탄약을 탈취했으며, 그해 3월에도 나주에 위치한 일본군의 무기고를 습격 왜병 2명 살해하고 송죽리 일대에 무기제조공장을 설치 동지 400여명을 규합해 의병대를 조직하기도 했다.

이듬해인 1909년 고막원 왜적 기습해 수십명의 왜군 살해, 나주, 무안, 영암 등의 왜적을 습격해 다수의 왜적을 살상하고 무기와 군장비를 노획하는 등 활발한 의병활동을 펼쳤다.
결국 이듬해인 1910년 일본군 2대연대 2,400여명의 대병력이 전남지방에 투입되어 대토벌작전을 벌이자 영암군 금정면 일대에서 끝까지 항쟁하다 체포되어 교도소에 수감 교수형을 확정받았다.

나성화씨는 그해 7월 대구교도소로 이송도중 탈출을 시도하도 왜군에 의해 살해당했다.
정부에서는 1986년 고인에게 건국포장을 1990년에는 애국장을 추서했다.
이후 1994년 9월 대전국립 순국선열 애국지사묘역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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