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닝맨

  • 입력 2015.02.09 09:29
  • 기자명 박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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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가끔 주말이면 TV에서 예능프로그램을 보곤 한다.
다 큰 연예인들이 뭐가 그리 좋은지 자기들끼리 역할을 나눠 각종 미션을 수행하고, 제작진들과 두뇌싸움을 벌이고, 한끼 식사를 놓고 복불복을 전개하기도 한다.

그 중에서 모 방송사의 런닝맨이라는 프로를 재밌게 본 적이 있다.
국민 모두가 다 알만한 연예인들이 나와 상황놀이를 자주 한다.
스파이도 되고, 초능력자도 되고, 때로는 운동선수가 되어서 서로를 속여가며 시청자들에게 큰 재미를 선사하곤 했다.

그런데 더 웃기는 건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 천연덕스럽게 연기하고 그것을 보는 시청자들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는데 있다.
최고의 무술고수가 되어 장풍을 날리고, 메이저리거가 되어 오는 공마다 무조건 홈런을 치고, 주문을 외우면 총을 맞아도 죽지 않는 불사신이 되기도 한다.

단, 그런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R’ 카드를 득템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기는 하지만.
보물찾기 하듯 카드를 발견하면 그 카드는 그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
카드에 적힌 내용은 곧 법이 되고, 무한능력을 제공하는 신이 되는 형식이다.
이렇듯 말도 되지 않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을 연출해도 우리들이 이것을 보고 재미있어 하는 것은 이것이 예능프로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이 지금 나주에서 연출되고 있다.
예능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버젓이 나주에서 벌어졌다.
일명 특정인 시청 출입제한 조치다.
공무원노조가 이 카드를 득템했다.

아무런 법적 효력이나 현실성, 또는 구속력조차 없는 카드인데도, 이 카드에 주문을 외우니 지역사회가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누구인지 뻔히 알고 있는 그 특정인이 공식 직함도 없고, 고위 공직자도 아니고, 심하게 표현하면 변변찮은 직업도 없는 사람인데, 나주시청 공직자가 무시하거나 아니면 거부하면 될 것을 굳이 시청출입제한이라는 카드를 사용해 주문을 외우는 꼴이다.

대한민국 그 어디에도 없는 일반인의 관공서 출입제한 카드.
그 카드가 나주에 등장한 셈이다.
법적 구속력이나 강제력도 없는 예능프로그램에나 나올 법한 일이, 나주에서 가장 엘리트집단이라는 공직사회에서 백주대낮에 버젓이 이뤄졌다.

심지어 이 ‘특정인 시청출입제한’이라는 카드가 부당한 간섭에 저항하다 쟁취한 승리의 전리품인 것 마냥 회자되고 있는데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30년 넘게 내공을 쌓아왔을 나주시 공직사회가 시장 측근이라는 단 한사람에 대해 대한민국 지방자치사에 길이 남을 ‘시청 출입제한’이라는 협상조건을 걸었다는 것은 거의 예능이다.
예능프로에 나오는 카드처럼, 그 카드만 손에 쥐면 신비한 초능력이 생기고, 주문을 외우면 능력이 발휘되는.......

현실에서는 그 어떤 구속력도 없는 ‘예능카드’가 나주에서, 그것도 나주시장, 나주부시장, 공무원노조간에 벌어진 협상 테이블에 올라왔다는 것은 두고두고 웃음거리로 남지 않을까 걱정된다.
시중에서는 그 카드 당사자에 대해 ‘X맨을 찾아라’ 하는 분위기다.
고위공직자도 아니고, 공식 직함도 없는 사람인데........

나주시청 공무원들이 그냥 무시하면 될 일이다.
부당한 압력을 가하면 거부하면 되고, 위협을 느끼면 신고하면 되고, 귀찮으면 무시하면 될 일인데 왜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라는 사람들이 ‘특정인 시청 출입제한’이라는 카드를 꺼내들고 시장과 협상을 벌였을까?
장담컨대 이것은 예능이다.

이것이 다큐라면, 나주시는 지금 정상이 아니다.
나주시의 특정인에 대한 시청출입제한, 나주 지방자치 역사에 비웃음거리로 길이 남을 이 헤프닝을 외부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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