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강씨 삼강문, 나주시향토문화유산 지정

  • 입력 2018.05.02 11:51
  • 기자명 정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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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강씨 삼강문의 나주시향토문화유산 제48호 지정 기념식이 4월 20일 강두석 진주강씨 모현공파 종회장, 강원구 진주강씨 광주 전남 종회장, 강기술 진주강씨 통계공파 광주종회장을 비롯한 광주.전남 진주강씨 종회원, 마을주민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나주시 산포면 화지리 소재 삼강문 뜨락에서 열렸다.

진주강씨 삼강문은 산포면 화지마을 진주강씨 집성촌에 건립된 충·효·열 문화유적으로, 임진왜란 충신인 강위구와 그의 효자 강봉령, 그리고 봉령의 처 남평문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1858년(철종 9년)에 나라에서 정려를 내려 건립한 사우이다.

1542년에 출생하여 1580년대에 이 마을 에 터를 잡고 살던 강위구는 충북 옥천 출신 의 학자이며 의병대장인 조헌 선생이 장흥으로 귀양 왔을 때, 자주 만나 많은 학문과 무술을 연마 하던 중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헌선생이 강위구 에게 의병을 모아 금산으로 올라 오도록하여 아들 강봉령을 비롯한 의병을 모아 조헌장군의 휘하로 들어가 금산전투 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아들과 함께 전사하여 칠백의총에 묻혔다.

이에 며느리 남평문씨는 부자가 함께 순절한 소식을 듣고 “시아비는 군왕을 위하여 죽고, 지아비는 아비를 위하여 죽었으니 처는 마땅히 지아비를 위하여 죽으리라" 하고 제비들이 많이 살고 있었던 연소동에서 초혼장과 삼우제를 마친 후 그곳에서 자결하니 하얀 연기가 일고, 무지개가 사흘간이나 하늘을 꿰뚫는 이적이 발생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리하여 나라에서는 강위구는 의병장으로 나라에 충성을 다한 충신으로, 아들 강봉령은 의병으로 아버지 뜻을 따라 전사한 효자로, 며느리 남평 문씨는 열녀로 추앙을 받게 되자 1843년 조정에서 충성과 효도를 다한 공으로 부자가 함께 동몽교관으로 추증 되었고, 1858년에 남평문씨에게 열녀의 포상과 영인으로 추증한 뒤, 1889년에 강위구는 병조판서, 아들은 이조참의, 며느리는 정부인으로 추증하고 국가에서 진주강씨 삼강문이라는 정문을 하사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나주시는 오랜 세월 나주와 역사를 함께해 온 지역의 문화적 자산을 보전‧관리하기 위해 4월 20일자로, 조선초 4군6진의 명장인 병조판서 충숙공 김수연 장군의 사우 용강재를 나주시 향토문화유산 제46호로, 나주나씨 명현선조인 금호 나사침을 비롯한 그의 아들 7위를 모신 사우 금호사를 제47호로, 진주강씨 삼강문을 제48호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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