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입력 2023.10.05 14:50
  • 수정 2023.10.06 10:51
  • 기자명 정순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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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제도가 도입기를 지나 성숙단계로 접어들면서 풀뿌리 민주주의가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본인들이 낸 세금이 어디에 쓰이고 정당한 절차를 거쳤는지에 대한 의회와 주민들의 자치단체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었다.

더 나아가 세금이 어디에 쓰여져야 하는지를 요구하고 자치단체의 부당한 인사, 지역사업, 일반행정 등에까지 시민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민주화와 환경운동에서부터 시작된 시민단체의 활동이 교육, 보건복지, 노동환경, 도시인프라, 지역축제 등에 이르기까지 지방자치의 모든 영역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의사결정 과정에 시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과 함께 지자체와 공무원들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민단체와 지역주민은 우선의 당면한 어려움이나 현안을 중심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경향이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국가의 정책이나 자치단체장의 공약사항을 중심으로 정해진 경로를 따라 행정을 집행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중장기적 정책에 대한 시각의 차이나 생활 정치와의 괴리가 발생한다.

최근 일본의 방사성 폐기물 오염수 방류에 대해 정부와 시민사회의 입장 차이가 대표적 사례다. 정부는 과학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고 많은 국민들은 어차피 방사성 물질이 소량이나마 포함되어 있어 국민건강을 헤친다는 것이다.

나주의 사례를 들면 나주시는 에너지국가산단, 한국에너지공대, 영산강국가정원(영산강복합개발사업), 나주농산물 국내유통과 해외수출 판로확보, 혁신도시 정주여건 개선, 미래교육지원 등에 관심을 갖고 있다.

반면에 시민들은 나주교통 운영투명성, 골프장 환경문제, 의병박물관 건립과 영상테마파크 철거, SRF문제, 영산강 축제, 축산물 악취문제 등에 더 방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동양의 정치는 크게 둘로 나뉜다고 한다. 하나는 소통의 공동체와 명령과 통제의 공동체다. 전자는 유교적 사유와 통하고, 후자는 법가적 사고와 연결된다. 유교가 소통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까닭은 소통으로서의 인간관계를 중시하며, 나아가 인간관계 유지를 위한 신뢰를 핵심 조건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점은 독특한 동양적 민주사상, 곧 맹자에서 개화되는 여민사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자치단체와 시민간의 소통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소통과 참여를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는 단기적으로 보면 비효율적이고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차선을 택하여야 하는 경우가 많다. 주민참여를 통하여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정착시킬 수도 있다. 지자체장의 단기적 성과주의와 시민들의 지나친 보상적 수혜적 욕구가 결합할 경우 포퓰리즘의 위험에 빠질 우려도 있다.

엄청난 석유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일부 중남미국가가 IMF구제 금융을 받는 사례를 종종 본다, 한국도 국가와 가계부채가 위험수위에 이르고 경제 성장률이 1.5% 내외에 머물고 있다. 이를 전 정부의 포퓰리즘 탓으로 돌리는 이들도 있다. 코로나 기간 중 취약계층만이 아닌 보편적 현금지급은 대표적 사례가 아닐까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자체장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독불장군이 되라는 것이 아니다. 불가(佛家)의 말처럼 끊임없이 소통을 하면서 경청하고 설득하는 기회를 가지되 정의·공정·원칙을 지키고 측근들의 농간에 흔들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한 소통과 타협의 과정에서 서로 지혜가 생기고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다. 나주시의 미래성장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강한 시민공동체 형성, 혁신도시 역량강화, 청년유입, 교육역량강화, 기업투자유치, 쾌적한 생활 환경조성 등을 기본적인 정책방향으로 설정하고 시민들의 일상적인 삶과 관련되는 크고 작은 대소사를 공명정대한 기준에 따라 무소의 뿔처럼 일처리를 하면 되는 것이다.

시민들도 소통하는 과정에서 토론의 원칙을 지키고 타협하는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 가야한다. 일방적 주장이나 객관적인 근거에 기반하지 아니한 편파적 주장을 할 경우 지자체장은 소통을 꺼리고 내부의사 결정에 의존하는 폐쇄적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당기간 동안 나주는 소통이라는 이름하에 포퓰리즘적 시정운영으로 성장동력 축적의 기회를 놓쳐버린 아쉬움이 크다. 당장 인기는 없지만 꾸준히 지속가능한 나주의 미래를 위해 지자체와 시민이 힘을 모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소통이라는 물리적 심리적 공간이 절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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