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목사 김재경(金在敬)과 프랑스영사 몽티니(Montigny)의 첫 만남 !

-나폴레옹이 나주 나씨가 아닐지라도 ~

  • 입력 2023.06.13 18:54
  • 수정 2023.06.14 08:17
  • 기자명 정순남(동신대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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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화면캡처(https://www.youtube.com/watch?v=2N0iC3bWivo)
YTN화면캡처(https://www.youtube.com/watch?v=2N0iC3bWivo)

아무튼 1851년 5월 영산포에서 배를 타고 지금의 신안군 비금도에 도착한 나주목사 김재경(金在敬)과 중국 상하이 주재 프랑스 영사 샤를르 드 몽티니(Montigny)가 나주 막걸리와 프랑스 와인을 마시며 최초로 조우를 한다. 나주가 처음으로 유럽 최강국 프랑스와의 문을 여는 역사적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비금도에 난파한 프랑스 포경선 나발(Naval)호 선원 20여 명을 구하러 중국 프랑스 영사가 ‘강리도’ 전설을 따라 전라도 나주목 관할 비금도를 찾아온 것이다. 10여 년 전 비금도 방문 시 아름다운 선왕산과 섬 같지 않은 넓은 들녘을 보고 깜짝 놀란 기억이 생생하다.

정순남(동신대 석좌교수)
정순남(동신대 석좌교수)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가리고 미천한 연구 탓에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지도가 ‘강리도(疆理圖)’다. 얼마 전 일본 후쿠오카 영사와 이라크 대사를 지낸 김현명 대사로부터 아프리카를 최초로 그린 세계지도의 탄생 ‘1402 강리도’를 건네받았다. 김대사가 이 책을 나에게 주신 이유는 코로나 이후 세계 무역 질서가 급변하게 개편되면서 우리나라 무역적자가 사상 최고치인 500억 불에 이르렀으니 ‘강리도’ 정신을 국민에게 널리 알려 다시 한번 글로벌 경제 대국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원양수산의 선구자이신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님이 신라시대 해상무역의 왕이었던 장보고 정신을 계승하여 무역 대국이 되자는 시도와 유사한 것이다. 다소 견강부회 적이기는 하지만 나주의 관점에서 172년 전인 1851년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자 하는 이유다.

1402년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混一理曆代國都之圖, 강리도>는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 47개의 지명이 적혀있는 지도다. 놀랍게도 ‘강리도’에는 아프리카 희망봉과 유럽의 알프스산맥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으며 고대 나일강의 원류로 알려진 ‘달의 산(쥐벨알마하르, Djebel al-Qamar)’이 표시되어 있는데 이는 2세기 이집트의 프톨래마이오스가 최초로 기록한 문헌에 나온다고 한다. 그 후 13세~14기 경 칭기즈칸 제국에서 15세기에 조선에 알려진 것으로 추측된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지 500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1992년 워싱턴에서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이뿐인가. 2005년에는 명나라 초 정화의 항행을 기리는 60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으며 영국 퇴역 장교 멘지스가 쓴 <1421년, 중국이 미국을 발견하다>라는 책이 선풍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나 정화의 원정 이전인 1402년 이미 조선에서 ‘강리도’라는 세계지도가 만들어진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강리도’는 이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제작으로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프랑스 영사 샤를르 드 몽티니(Montigny)가 ‘강리도’를 따라 나주 목사와 만나는 계기를 제공한 단서가 되었다는 것은 소설만은 아닐 것이다.

몇 번에 걸쳐 프랑스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첫 번째 기억은 혁신의 아이콘으로 알려진 소피아 앙티폴리스 클러스터 방문이었다. 프랑스 남부 도시 니스는 칸 영화제가 열리는 도시로 유명하다.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거리에 프랑스의 혁신도시 소피아 앙티폴리스가 자리 잡고 있다. 소피아 앙티폴리스는 토목공사로 평탄작업을 한 뒤 전기, 통신, 상하수도 등의 기반 시설을 하고 공장용지로 분양하는 우리나라의 획일적인 산업단지와는 확연히 다르다. 기존의 산지와 구릉을 원형지 그대로 활용하여 하나의 아름다운 공원처럼 연구단지를 조성하였는데 우리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

당시 영국의 케임브리지 클러스터와 스웨덴의 시스타 등도 함께 방문하였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당시의 가장 어려운 국가의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해법들을 제시하려는 수많은 아이디어 중 하나가 혁신경제였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혁신클러스터 방문은 지금의 산업단지 혁신클러스터나 나주를 포함한 10개의 혁신도시가 만들어진 계기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혁신도시는 소피아 앙티폴리스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고 말았다.

난파선 문제가 해결된 후 몽티니 영사는 상하이로 떠나기 전 5월 2일 나주목사 김재경(金在敬)을 만나 저녁 자리를 가졌다. 이날 프랑스산 샴페인과 갈색 옹기에 담긴 나주 막걸리의 첫 만남이 있었다. 올해 5월 2일 프랑스 국립도자기박물관에서 주프랑스 한국대사관 주최로 열린 ‘역사 속의 한국과 프랑스, 그 첫 만찬’ 행사장에 172년 전인 1851년 조선의 나주 목사와 프랑스 샤를리 몽티니 프랑스 영사가 처음 만나 막걸리와 샴페인을 나눈 만찬을 재연하는 행사가 재현되었다고 한다. 만남, 인연, 역사적 사건 등은 창조적 상상력의 모멘텀이 될수도 있다. 곡성의 심청이 시집갔다는 중국 절강성 저우산시와의 인연이나 최근 정약용, 정약전 형제가 헤어졌다는 율정정복원에 관한 논의도 그런 차원으로 이해된다.

최근 나주에 불기 시작한 문화의 바람이 신선하다. 프랑스는 문화, 관광, 패션, 건축, 와인, 첨단 ICT 산업 등으로 알려진 세계 산업과 문화의 중심지다. 무엇보다도 프랑스는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문화를 끊임없이 추구해 왔다는 것이다. 프랑스만큼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고 자유로운 결혼문화를 통해 출산율을 유지하는 나라도 드물다. 프랑스 정신을 압축하는 사건은 유럽의 왕정 체제를 종식한 프랑스혁명이 아닐까 한다. 1769년 코르시카섬에서 태어난 나폴레옹은 1789년 프랑스혁명을 맞아 전쟁 영웅이 되었으며, 1799년 프랑스 황제가 되었다. 비록 루이 16세의 폭정에 항거하여 일어난 프로레타리아의 혁명은 요즘 용어로 브루조아지의 개이득으로 끝나긴 했지만, 미국의 독립혁명과 오늘날의 시민민주주의 탄생의 결정적 배경이 되었다.

지도가 물리적 공간을 표현하는 기존의 관념을 벗어나 상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해체주의적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것처럼, 172년전 나주목사와 프랑스 영사의 만남이 나주 문화와 프랑스 문화의 새로운 교류의 계기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중국이 주장하는 동북공정처럼 고구려땅이 중국땅이 아니듯 나폴레옹이 분명 나주 나씨 일리는 없다. 미국과 중국이 압도하는 세계 경제질서 재편 속에서 프랑스가 상징하는 희망의 씨앗이 나주에도 심어지고 싹트기를 기대해 보는 것이다. 내년 봄에는 프랑스 대사를 나주에서 모시고 나주 막걸리와 프랑스 와인을 마시며 梨花月白’ 하고라도 해 볼 일이다. 일제에 침탈당한 ‘강리도’는 현재 일본 류코쿠(龍谷)대학 도서관에 역사의 한을 품고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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