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시의회 제8, 9대 무소속 시의원으로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을 위한 환경문제 제기와 아울러 지역의 자발적 시민참여 문화 예술의 저변 확대를 위해 발로 뛰는 의원이 있다. 농어촌지역 바닷가에서 자란 김철민 의원은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생활 속에서 음악(가스펠)과 어우러질 수 있는 배경 속에 있었다.
어린 시절 형들이 치던 통기타를 가지고 자연스레 소일거리로 놀았던 것이 지금까지 음악적 감성을 유지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1년 전부터 환경 버스킹을 기획하고 직접 공연을 하면서 시민들과의 접점에서 감성적 공감을 나누어왔다. 이후 재능 나눔 릴레이를 기획하고 있는 나주시의회 김철민 의원을 햇살이 따가운 6월의 중순 빛가람동에서 만났다.
김철민 의원은 모태신앙으로 7형제 중 막내로 자랐다. 하지만 10살 무렵 부친이 돌아가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사고를 한 계기가 되었다. 특히 홀어머니의 생계에 대한 고군분투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 마음가짐을 바로 할 수 있었고 어머니의 성경을 기반으로 한 밥상머리 교육은 커다란 삶의 지침이 되었다. 그 시절의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러했겠지만 김 의원의 어머니도 7형제를 억척같이 키웠냈다.
김의원에게 가장 인생의 모토가 된 큰 사건이 발생했다. 이것은 어머니에게서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된 결정적 깨달음의 계기가 있었다. 고향이 정부의 일방적인 핵폐기장 지정으로 민심이 찬반양론으로 갈라지며 반대 주민에 대한 무참한 방해 행위가 지속되었다. 이에 김 의원의 어머니는 지역의 반대 주민대표로 5년간 핵폐기장 시설 설치 반대운동에 앞장섰다. 시민환경 단체와 함께 서울대를 비롯한 수도권 대학 등에서 주민대표로 고향을 지키기 위한 수십차례 연설을 하셨다.
그 과정을 지켜보던 김 의원은 정부를 상대로 무모하다고 생각했었고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 생각하며 보상금을 받고 그만 두는것이 더 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끝내 주민과 환경단체의 5년간 투쟁으로 승리하게 되었다. 그 후 정부는핵폐기장 선정을 지정방식에서 공모방식으로 바꾸게 되었다.
정의는 쉽게 주어지지 않으며 누군가의 통렬한 노력 없이는 세상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부정의에 대해 강하게 외쳐야 한다는 것과 그러기 위해서는 지적으로 무장 해야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언제든지 다수가 소수를 유린할 수 있는지를 어린시절 어머니를 통해 체험한 것이었다.
김 의원은 어린시절 교회를 다니며 교회음악이 늘 가까이에 있었다. 그후 교회 성가대를 통해 음악적 감수성을 지속하였다. 그것이 삶의 버팀목이기도 했다. 하지만 서른 이후이 삶의 현장에서 정신없이 살다 보니 음악적 감수성과 즐겨하던 기타를 놓고 살았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최다득표로 빛가람동 시의원으로 재선에 당선되었다.
이후 환경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제고를 하고 시민과의 접점에서 감성적인 소통을 위해 용기 내어 놓았던 기타를 다시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시민들 가까이서 음악으로 소통하고 함께 감성을 나누고 싶어서이다. 혁신도시는 공기업의 젊은 세대들이 많고, 문화적 니즈가 다양하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문화적인 요구들을 만족시킬 만큼의 문화시설과 예술무대가 부족한데다 대부분 관제 행사가 이루어줘 시민들과의 괴리가 크다.
우선 재능이 있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직접 공연할 수 있는 무대가 부족하고 그에 대한 프로그램 지원에 대한 관점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나주에서 문화•예술은 도시의 핵심 브랜드를 구성하는 경쟁우위이다. 아예 김 의원은 실내, 실외 공연장을 더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복합 문화공간을 위해 행정, 정치인들의 관심이 필요하며, 이에 지역민의 문화 다양성 충족을 위해 문화 예술 컨텐츠 개발에 행정자원을 집중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4년전 지역구 시의원들과 같이 빛가람호수공원 버스킹 공연 기획을 나주시를 설득하여 추진하였다.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시민 문화를 유도하고 행정으로 하여금 시민이 주도하는 씨앗을 뿌리기 위한 버스킹이었다. 대단히 호응이 좋았고 기후 다양한 시민주도의 예술행사가 줄을 잇게 되었다.
김 의원은 빛가람 호수 공원에서 환경 버스킹을 6회에 걸쳐 진행했다. 최근에는 봉사단체 ‘동행’의 밴드일원으로 음악나눔봉사에 매주 참여하고 있다.
김 의원은 남도를 사랑한다. 천혜의 자연경관이 너무 다채롭고 풍성하다. 자연을 좋아하고 캠핑을 좋아하는 김 의원은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남도에는 캠핑을 하기 좋은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장소들이 너무 많다. 지나가다가 그냥 멈추고 헥사타프만 치면 그곳이 캠핑장이다. 하지만 시의원 이후로 캠핑을 즐길 여유가 없어서 너무 아쉽다.
김 의원의 인생모토는 “인생을 살면서 50대에 지역사회에 기여하며 살아야겠다”는 것이다. 이런 다짐으로 하루를 후회없이 보내려고 하다보니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는 외면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김 의원은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다. 김 의원의 한결같은 마음은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오지 않을까 싶다.
저녁 늦은시간 산책을 하며 하루를 뒤돌아보며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김 의원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신념을 보여주었다. 시대적 요구에 따라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신이 준 소명(Vocation)이라 여기며 묵묵히 한 길을 걷고자 한다고 말하였다. 아울러 음악적 감성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 위안이 된다면 어디든 달려가 “기타를 치며 노래하겠다”고 말했다.
